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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948년 9월 28일 ~ 1970년 11월 13일 (향년 22세) [[대구]]에서 난 의인. [[노동자]]의 [[친구]]. 백수 디시충들이 헬조선 죽창죽창거릴 나이에 직접 국가에 죽창을 꽂으신 분이다. 우리가 그나마 일한 만큼 받을 수 있게 하신 분. ← [[주휴수당]] : ? 이분이 연간 평균 노동시간을 2,000시간 넘게 줄여놨다. 이분 분신하기 전 헬조선의 연간노동시간은 4,746시간[(365-26)*14=4,746]이었다. 근데 그렇게 줄여놓고도 2,000시간 넘는다. 젠장 씨팔! 이 아재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노예보다 못한 가축 취급을 받았을 거다. 한동안 전태일 평전은 [[금서]], 불온서적으로 찍혔고, [[조영래]] 변호사가 1983년에 책을 낼 때는 익명으로 썼다. 조영래는 [[일본]]에서 1973년에 [[일본어]]판으로 책을 냈다. 1983년 당시 전태일 평전은 금서였다. 이 책이 조영래가 쓴 것으로 공개된 것은 1991년도였다. 88올림픽 이후~90년 초 무렵, 조영래 변호사가 아직 생존해있을 무렵부터 전태일 평전의 원 저자가 조영래라는 소문이 노동계, 대학가에 돌기 시작했다. 조영래 [[변호사]] 본인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사망 때까지 침묵했다.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이 금서에서 해금된 것은 1993년이다.''' 이 1993년에 [[김영삼]]의 지시로, 김남주도 석방되고 박노해도 석방되었다. 위대하신 분입니다. 전태일 평전을 꼭 읽도록 합시다. 읽다 보면 과연 이 사람이 중학교도 졸업 못한 비참한 도시 빈민인가 의문을 가지게 된다. 괜히 책에서 성자(聖子)라고 한 게 아니다. 전태일이 박정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굉장히 슬프다. 월 2회의 휴일과 14시간 노동시간의 단축을 주장했다. 즉 당시 노동자들은 한달에 이틀도 쉬지 못하고 하루에 14시간 일했다는 것이다. 이 편지는 박정희에게 전달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 분이 평범하게는 빨갱이, 좀 점잖게는 공산주의자라고 까는 우덜주의 수꼴들이 있는데 전태일은 사상적으로 어느 쪽도 아니었다. 시발 한자도 제대로 못 읽어서 법전, 그중에서도 근로기준법 항목만 해석하는데도 동네 대학생 형 쫓아다니며 겨우 해석한 사람이 마르크스가 쓴 책 한 권이라도 읽어봤겠냐?<ref>마르크스의 대표적인 저서 자본론은 존나게 어려운 내용이라서 전태일니뮤같이 현명하신 분이라도 한 달 정도는 각잡고 정독해야 한 번 머리통에 들어오는 데다가 마르크스 서적들은 당시에는 전부 국보법으로 금서였기 때문에 어지간한 금수저가 아니라면 구하기 힘들었다.</ref> 오히려 [[박정희]]에게 "국민의 어버이이십니다." 라고 쓴 편지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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