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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시절 == {{타이거즈그자체}} {{타이거즈레전드}} {{라이온즈그자체}} {{골든글러브}} {{야구잘함}} 연세대에서 잘하고 85년 해태에 들어왔다. 당시 첫 포지션은 외야수가 아닌 3루수! 수비도 평타는 쳤다. 그러던 중 86년 한대화가 들어오면서 밀려나자 외야수 연습을 위해 자신 혼자만의 훈련을 하게 되는데... 체육관에서 공을 뒤돌아 본체로 받는 훈련으로 외야 수비를 연습했다. 그렇게 그의 특기인 라면수비가 나왔다. 대놓고 표정부터가 귀찮음의 표본으로 공을 잡을때 마다 "야이 투수 씨팔새끼야 내가 이딴 볼을 받아야겠냐 씨발"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잡았다. 88년부터 93년 까지 해태의 중심 선수로 골글도 여러번 타고 전성기를 경험했다. 김일권의 대를 이을 대도였으며 호머도 심심찮게 깠다. 잠실에서 1이닝 2홈런 깠으면 말다했지 프로야구 출범 이후 5tool 플레이어의 원조격이다.(김재박은 프로와서 장타력이 좀 딸렸다) 그러던 중 93년,[[이종범|보이지 않는 형체]]가 들어오면서 조금씩 밀려났다. 본인 성적이 그렇게 떨어진건 아닌데,세대교체의 이유도 있었고 실력이 약간 딸린것도 있었다. 95년 0.201이라는 개쓰레기 타율을 찍은뒤 96년 부터 그냥 백업으로 쳐밀려났지만 96 코시에서 활약후 겨우 살아났... 긴 개뿔 97년 벤치에 박혀있다가 코감독에게 찍혀서 꺼찢됐다. 사실 96년에 스캠에서 하와이 항명파동으로 존나 찍혀서 그렇게 된것.성적도 좆도 떨어지는 새끼에게 기회를 줄수 없다고 봤던 코끼리가 바로 모가지를 딴것이다. 결국 해태에서 방출 후 백업이 필요하던 삼성으로 가서 포시에서 적시타 하나 갈긴 후 은퇴했다. 그렇게 전성기와 오욕이 공존하던 선수시절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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