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응오딘지엠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개요 == 1954년부터 [[완조]]의 마지막 수상으로 일하다가 [[보대제]]가 대국적이지 못해서 직접 제정을 작살내고 1956년부터 남베트남의 총통직에 올랐다. 반공인사들 중에는 유일하게 미개한 바게트 종자들과도 상종을 안했고, 왜노 원숭이들 한테도 넘어간 적이 없으며, 그링고들 간섭 없이도 자체적으로 남베트남을 다스리는 등 국가원수로서의 자질은 나쁘지 않았다. 심지어 호찌민도 이 양반을 꼬셨을 정도. 근데 가톨릭만 후빨하고 베트남 최다 인구를 차지하는 [[불교]]를 탄압하였다. 마치 조선말 제주도의 가톨릭 선교 정책같다. 이외에도 낙하산 인사들을 배출하고 비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등 당연히 이 새끼는 독재자로써 국민의 반감을 샀고 북베트남 간부나 심지어 미군으로부터 암살 시도를 당한다. 임기 1963년에는 불교 승려 틱꽝득이 분신 자살하여 남베트남 국민의 분노는 더 심해졌다. 그래서 그 해 11월 즈엉반민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에 의하여 응오 딘 지엠 정권이 무너지고 나중에 병원으로 옮겨지는 도중에 지 동생 응오딘누와 함께 암살당했다. 크 사이다 유학자 집안 출신에다 아버지인 응오 딩 카와 스승인 판 보이 쩌우의 문하에 있었던 만큼 가부장적이고 줏대가 강했다. 특히 유교의 덕과 프랑스에서 태동한 인격주의를 결합한 향촌운동으로 낙후된 사회를 발전시켜 자유월남이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반석을 마련코자 했다. 같은 반공우파 정치인이었던 이승만이 사유재산 보호를 통해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만들어 그 이윤으로 국력을 성장시키려 했던 것과는 다른 셈이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