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윤학길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선수 시절== {{야구잘함}} {{노예}} {{감동}} {{금손}} [[파일:윤학길 투구.gif|800픽셀]] '''통산 100완투''' [[최동원]]이 단기간동안 개씹사기캐였다면 이분은 꾸준함으로 레전드다. 100완투 기록과 그당시 활동하던 [[각동님]]에 밀려 빛을 못보던 투수. '''고독한 황태자''' 라는 별명이 있었다. 117승으로 롯데 투수들중 통산 최다승기록을 가지고 있다. [[손민한|금지어]]를 제외하고 꼴데에서 유일한 100승 달성투수였고 2017년 [[송승준]]이 드디어 100승을 찍었다.<ref>최동원씨는 꼴데에선 100승을 못 찍고 꼴런트한테 토사구팽당해서 제외. (103승 중 마지막 7승은 칩성에서 올림.) [[송승준|씹새]]가 현재 현역중 100승에 가장 가까운데 40억을 쳐받고 먹튀짓을 하고있다가 다음 해 부활해서 100승을 찍었다. </ref> 롯데 우승년도였던 92년엔 [[염종석]]이랑 원투펀치를 구성하기도 하였다. 97년에 은퇴 사실 최동원 염종석에 꿀릴게 없는데 단지 안경을 안썼다는 이유만으로 존재감 종범... 근데 인간적으로 이분은 영결시켜줘야 되는거 아니냐 꼴런트야 1984년 첫 우승 직후 1985년부터 꼴데는 후유증으로 헤어나올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최동원의 부진 및 부상, 식물이 된 빠따, 불펜의 방화 등 이길래야 이길 수가 없는 경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1986년 윤학길이 입단한다. 1986년 입단 첫 해 성적은 1승 2패 2세이브로 이렇다할 성적을 못냈다.(물론 지금 좆크보 수준에서 루키신인이 이 성적 내면 존나 빨린다) 하지만 그 다음해인 1987년부터 포텐이 터져서 200이닝을 소화하고 평자 2.57에 13승 10패를 기록한다. 심지어 13완투에 그마저도 완봉 2번이다. 2년차 신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을 냈다. 하지만 최동원의 부진으로 꼴데는 포시를 못갔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88년은 더욱 미쳐날뛰던 해였다. 평자 3.15에 18승 10패 3세이브로 다승왕을 먹었고 동시에 123삼진으로 탈삼진왕 타이틀도 먹었다. 하지만 이 해에도 최동원이 부상으로 전반기 시즌아웃 당해서 꼴데는 포시를 못갔다. 그 다음해인 1989년에는 꼴데 역사상 가장 애미뒤진 사건이 일어났다. 최동원이 트레이드 된 것이다. 프랜차이즈가 트레이드 되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꼴데는 꼴찌를 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윤학길은 16승 11패 2세이브 평자 2.70 탈삼진 141개로 88년에 이은 최고의 활약으로 홀로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3년동안 계속 혹사만 당한 윤학길은 결국 퍼져서 1990년 3승 12패 평자 4.07로 주저앉아 버린다.(그와중에도 완봉 2번함) 하지만 운이 좋게도 이 해에 슈퍼베이비 [[박동희]]의 등장으로 롯데는 그나마 윤학길의 공백을 메울수 있었다. 이 해에 박동희는 10승 7패 7세이브 평자 3.04로 고졸 루키 신인치고 ㅆㅅㅌㅊ 성적을 냈다. 그러나 1991년 윤학길은 1년만에 다시 부활해서 205이닝 17승 12패 평자 3.25로 에이스의 역할을 다시 보여주었다. 박동희 역시 14승 9패 3세이브 평자 2.47로 2선발 역할을 톡톡히 보여줬다. 이 두 원투펀치에 힘입어 롯데는 4위로 준플에 올라가지만 칩성에게 털려서 광탈하고 만다. 준플 사상 초유의 무승부까지 가면서 혈투를 벌였지만 칩성이 너무 쎘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92년, 슈퍼베이비 박동희가 간염으로 전반기 시즌아웃이라는 초유의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하늘이 꼴데를 버리지 않으셨는지 더 어마어마한 슈퍼루키가 혜성같이 등장한다. 염라대왕 [[염종석]]이 나타난 것이다! 염종석은 204 2/3이닝을 던지며 17승 9패 6세이브 평자 2.33으로 신인왕을 따냈다. 모두가 구세주 염종석을 주목할 때, 윤학길은 묵묵히 뒤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212이닝 17승 5패 2세이브 평자 3.61로 여전히 에이스의 면모를 보였다. 후반기 박동희가 복귀하여 7승을 하는 등 이 3명의 투수의 땀방울에 힘입어 롯데는 정규시즌 3위로 준플에 진출했다. 그리고 염종석과 박동희의 씹 하드캐리로 '''롯데는 두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하지만 투수깎는 노인 [[강병철]] 때문에 이듬해인 1993년 롯데는 1985년처럼 다시 무너진다. 염종석은 전 해의 혹사로 10승 10패로 부진했고 박동희 역시 6승 11패로 무너졌다. 윤학길은 또다시 나홀로 고군분투 모드로 들어가서 203이닝 12승 12패 12완투 4완봉 평자 3.01로 혼자서 팀을 이끌어나갔다. 수비랑 불펜이 좀만 더 도와줬으면 더 많은 승을 얻었을텐데... 롯데는 이 해에 6위로 다시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94년 윤학길은 다시 혹사의 여파로 주저앉아 버린다. 91년부터 93년까지 620이닝을 던졌으니 탈 안나는게 이상할 정도지만... 이 해에 윤학길은 4승 7패 평자 5.35로 최악의 시즌을 보낸다. 이 해에 많은 사람들이 윤학길은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나이도 30대에 접어들었던지라 더 이상의 커리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다음해 윤학길은 또다시 기적적으로 부활했고 159 1/3이닝 12승 8패 6완투 1완봉 평자 3.28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이런 윤학길의 살신성인과 또 다른 슈퍼루키 [[주형광]]의 등장으로 정규시즌 3위를 한다. 참고로 이 해에 주형광은 200 1/3이닝 10승 7패를 한다. 꼴데는 2위였던 좆쥐와 플옵을 치루는데 주형광의 하드캐리로 4승 2패로 3년만에 한국시리즈를 갔다.(특히 6차전은 주형광의 1안타 완봉으로 시리즈행을 결정지었다.) 하지만 코시에서 윤학길은 마지막 7차전에서 1회부터 털리는 바람에 결국 콩을 먹고 만다.(근데 임팩트는 박정태 알까기가 더...) 그리고 1996년 윤학길은 더이상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3승 5패 평자 4.58로 주저앉아버린다.(그와중에도 완투를 2번이나 했다...ㄷㄷ) 결국 이 해를 마지막으로 윤학길은 은퇴를 한다. 그렇게 최동원, 박동희, 염종석, 주형광이라는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선후배의 그림자에 가려 고독한 세월을 보냈지만 팀의 암흑기때 홀로 고군분투했던 고독한 황태자는 그라운드를 떠났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