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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니아누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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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청년기 == 마케도니아 촌구석 농부 집안에서 태어나 밭이나 갈면서 살아가다가. 같이 밭갈던하던 삼촌이 입신양명의 꿈을 품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향하면서 유스티니아누스의 인생은 변화하게된다. 수도로 간 삼촌 유스틴(Iustin)은 문맹에 교육의 ㄱ자도 못본 사람이라 그렇지 사람이 호탕하고 체격이 늠름해 금세 전쟁에서 공을 세워 졸병에서 황제 근위대로 승진했고, 이렇게 수도에서 어느정도 입지를 굳힌 유스틴은 슬하에 자식이 없었기에 고향에서 농사나하던 유스티니아누스를 불러 가르치고 입히고 먹이며 친 아들처럼 길렀다. 시간이 흘러 유스틴은 어느새 근위대장이 되어있었고 유스티니아누스는 자신의 이름을 유스티니아누스로 개명한다(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우리가 익히 아는 유스티니아누스란 이름은 개명한 이름이고 전 이름은 플라비우스 사바티우스) 한편 유스틴은 섬기던 황제가 후사를 정하지 못한채 병사해버리는 사태가 벌어진다. 수도의 귀족들은 당연하게도 유력한 황제 후보인 유스틴에게 뇌물 공세를해댔고, 이에 유스티니아누스는 유스틴에게 받은 뇌물을 시민들에게 베풀라 조언했다. 그랬더니 유스틴은 단지 귀족들만의 지지가 아닌 시민들의 지지도 얻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전임 황제의 조카들과 군대의 지지인데 이 또한 유스티니아누스의 조언이 큰 역할을 한다. 일단 유스티니아누스는 명망이 높은 장군을 수도로 불러들여 포섭을 시도했고(그러나 장군의 명망이 너무 컸기에 포섭을 시도하다 결국 암살해버린다.) 전임 황제에게 미움을 사 작위가 박탈되거나 투옥된 군인들을 사면하고 고용해 유스틴의 친위 세력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때 즈음에 테오도라와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하려다 독실한 신자이던 형수에게 빠꾸먹고 잠시 헤어진 척 코스프레했다. 그 후로 그냥저냥하게 시간이 흐르던 중 테오도라를 빠꾸먹였던 형수가 죽고 얼마 뒤 유스틴도 사망하자 그 후계로서 유스티니아누스가 즉위한다(그리고 즉위하자마자 법을 고쳐 테오도라와 결혼한다.) 즉위 후 유스티니아누스는 제국 각지에서 명망 높은 인사, 능력있는 인물들을 등용해 제국 개혁에 나선다. 테오도라에 대해 잠깐 얘기하자면, 창녀 출신이다. 스트립쇼나 해대던 비천한 여자였는데 창녀 치곤 빡머가리가 아니었는지 존나 똑똑했다고 한다. 와꾸도 어느정도 먹히고 머리고 좋은 테오도라를 유스티니아누스는 창녀였지만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삼촌인 유스티누스 1세에게 "삼촌 천민하고 귀족하고 결혼할 수 있게 법좀 고쳐주세요"라고 했다가 유스티누스가 "만날 여자가 없어서 창녀나 만나냐 개새끼야" 이럴 정도로 반대했다고 한다. 결국은 유스티니아누스는 즉위하자마자 법을 고치고 테오도라랑 결혼했다고 한다. 이것은 유스티니아누스의 신의 한수가 되어서 테오도라는 결혼 후에는 정숙하게 살았고(다만 프로코피우스의 비사에는 그런 '척'만 했다는 설이 있다.) 거의 공동 통치자급으로 군림했다. 그대신 유스티니아누스가 공처가가 됐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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