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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진즉에 유물론과 유심론 양단을 배격하면서 그 유명한 '중도'를 설하신 바 있다. 당시 범아일여의 [[윤회]] 논리가 지배하던 [[인도]]에선 자연스럽게 순한 양처럼 선업만 강제하는 가치관이 만연했는데, 그러다 보니 현세에서 보다 좋은 삶을 영위하려는 시도 자체가 철학적으로 천시되거나 잘해봐야 체념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육사외도(불문의 정도를 벗어난 여섯 스승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당대 베다의 권위를 인정치 않았던 학자들을 일컫는다) 중 하나였던 아지타 케사캄발라라는 유물론자가 어느 날 등장과 함께 신풍을 일으키게 되는데, 당연히 현세 허무주의의 기반인 윤회 논리를 공격해 현생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갈 뿐 선업도 악업도 실재가 아니라고 하였다. 바로 여기서 아지타가 또 하나의 극단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 싯다르타의 생각이었다. 현생뿐 더 이상의 지속이 없으니 현세에 온전히 집중하자는 취지와는 거꾸로, '''현생뿐 더 이상의 지속이 없으니 인생 막 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현생의 무게를 거의 공기 수준으로 만들어버리는 위험까지 발생되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유물론이라는 일반론은 그 규모만큼 현상적 이해를 대폭 넓혀줄 수 있지만, 또 그만큼 추상되는 '실제', 특히 인생에서 정작 중요한 주관적ㆍ실존적 영역 전체에 대한 인식을 심히 무시하고 왜곡시킬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식으로 말하자면, "세계는 사물들의 집합이 아니라 현상들의 집합"인데 유물론은 임의적으로 그 세계의 상 절반을 덜어 낼 위험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세상의 실존적 고통 제거가 목표인 싯다르타에겐 너무나 치우친 견해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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