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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 <BIG>'''[[뉴욕 양키스]] 선수로 10번 우승, 지역 라이벌 [[뉴욕 메츠]] 코치로 1번 우승, 그리고 다시 [[뉴욕 양키스]] 코치로 2번 우승'''</BIG> <BIG>'''양키스의 6대 신이자 뉴욕의 신'''</BIG> '''[[빌 디키]]의 후계자''' 요기 베라(Yogi Berra) 뉴욕 양키스에서만 우승반지 12개를 획득하신 레전드 포수이다. 그런데 포수와 좌익수 출장 비율이 비슷해서 완전 포수는 아니다. 명언 제조기라는 별명답게 많은 명언이 있다. ex)지켜봄으로써 당신은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우승을 하도 많이 해서 우승반지를 손가락에 다 끼고 발가락에다 낄 수 있다. 선수로 기록은 10번의 우승과 18번의 연속 올스타출장이 있다. 빌 디키와 함께 8번 영구결번이다. 하지만 감독으로는 문제가 많았던 인물이다. 은퇴하고 바로 양키스 감독이 되었고 1964년 사실상 가을야구가 확실시되는 호재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내야수 필 린즈가 팀 버스안에서 하모니카를 크게 연주하자 팀의 중심 [[미키 맨틀]]에게 그만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린즈는 들어먹지 않았고, 참다 터진 베라는 린즈의 하모니카를 뺏어서 얼굴을 가격했다. 빡친 린즈는 베라의 리더쉽에 의문을 증폭시켰고, 팀 분위기를 망치는 주범으로 몬다. 그래서 베라는 99승하고 세인트루이스와의 월드시리즈 7차전 혈투까지 벌여서 안타깝게 준우승을 하는 좋은 성적을 세웠지만 팀 분위기 저해와 감독의 자질을 의심당해 짤렸다. 이 상황에 빡친 베라는 지역 라이벌 메츠로 튀어나간다. 그리고 스승인 [[케이시 스텡걸]]이 메츠의 감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코치로 남는다. 그리고 스승이 짤리고도 남아서 1969년 메츠의 첫 우승을 도우며 11번째 우승반지를 얻는다. 그리고 1972년부터 1975년까지 메츠 감독을 해서 가을야구는 꾸준히 내보냈으나 톰 시버 원맨팀이라 사실상 요기 베라의 능력은 톰 시버가 소폭 망한 1974년부터 나온다. 73년에 비해 타자들 상태는 좋아졌지만 딱 시버만 성적이 안 좋아졌을 뿐인데 11승이나 날라가며 71승 91패를 기록했다. 75년에는 톰 시버가 잘했지만 짤렸다. 그 후 양키스 감독을 했으나 지랄맞은 구단주가 바로 짤랐다. 양키스 쪽 활동하시다 별세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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