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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나라 시기 == 1612년 출생, 소년 시절 아버지 오양이 만주군에게 포위되자 필마단기로 적진에 뛰어들어 아버지를 구했다는 기록이 있다. 29살에 명나라 제독이 되어 무난한 커리어를 펼치고 있었다. 그러던 오삼계가 명의 희망이 된 까닭은 별거 없다. 송산 전투에서 명나라는 청나라에게 6만의 군사를 말아먹힌다. 소현세자가 조선 포수들을 격려하려 방문했고, 조선 포수들이 명나라 군사들의 대가리에 헤드샷을 날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이 송산 전투에서 명군은 화려하게 개망했다. 총사령관 홍승주는 청군에게 항복하고 명 정예군 6만이 증발해버렸다. 이때 1만명의 병사를 이끌고 산해관까지 무사히 후퇴한게 바로 오삼계이다. 하지만 명군은 이미 정예병력이 싸그리 증발해서 [[이자성]]의 농민 반란군에게 열심히 수도가 털리다 못해 결국 멸망했다. 근데 여기서 오삼계가 씹새끼인게 청나라고 뭐고 걍 산해관 문 열어주고 와서 북경이나 좀 막으라는 [[숭정제]]의 말을 씹고 거의 기어가듯이 북경으로 진군했다. 그러던 와중 이자성의 반란군이 존나 빠르게 북경을 들이치는 바람에 결국 숭정제는 자살했고, 명나라는 망했다. 이제 오삼계에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였는데, 조국 명나라를 멸망시킨 한족 농민 반란군 순나라 이자성에게 항복할 것이냐, 오랑캐 청나라에게 항복할 것이냐였다. 오삼계도 한족이었기 때문에 걍 이자성에게 항복하려는 와중에 대형사건이 터진다. 농민반란군이 아버지 오양을 납치해서 고문하고 재산을 빼앗은 것이다. 이자성도 실수라고 느꼈는지 오양을 풀어줬지만 오삼계가 끝내 항복하지 않자 오양을 죽이고 산해관으로 진군한다. 산해관의 남은 병력은 고작 3만, 북경이 털렸기 때문에 잔존 명나라 군은 이제 오삼계의 산해관 병력 뿐이었고, 산해관 밖에는 청 섭정 도르곤이 10만명의 군을 이끌고 쟤네 언제 서로 치고박나 간을 보고 있었다. 애비가 뒤지고 북경이 불타오르고 이자성 군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오삼계는 주저하지도 않고 바로 산해관 문을 열고 만주족 어서옵쇼~를 시전하며 청나라에게 중국을 홀라당 넘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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