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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존인물 == {{존나셈}} '''葉問''' [[1893년]] [[10월 1일]] ~ [[1972년]] [[12월 2일]] [[청나라]] [[광동성]] [[광동성#불산|불산부 남해현]] 출생. 전설적인 무술인으로 중국 남파무술의 일종인 [[영춘권]]을 대중화 하고 널리 보급시킨 영춘권 일대종사. 졸라 금수저집안에서 태어나 아주 어릴때부터 한학을 배웠다. 12살때부터 영춘권유단자인 진회순의 제자가 되어 영춘권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진회순이 백발노인이었다보니 엽문이 영춘권에 입문한지 얼마못가 병으로 죽었고 그의 콩번째 제자인 오중소에게서 대부분의 영춘권을 배웠다. 16살때 홍콩으로 유학을 가 성 스테판 컬리지를 다녔다. 다니는 동안 여자를 때리던 외국인 경찰관을 영춘권으로 두들겨팬뒤 도망가고 어떤사람한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그사람은 '님 영춘권함? 그럼 니 기량 테스트해보게 함뜨자'라고 반응했고 엽문은 그에 응하여 그사람과 맞짱을 떴다. 하지만 엽문은 개쳐발렸다. 그사람은 엽문의 1대스승인 진회순의 선배 + 스승의 아들인 양벽이었거든. 그래서 엽문은 양벽에게 또 수련을 받아 24살 고향인 불산으로 돌아가기전까지 쭈우우욱 무술을 배웠다. 고향으로 돌아간 뒤 경찰일을 했다. 때문에 직접 무술관을 열지 않고 지친척, 친구, 부하들에게만 영춘권을 가르쳤다. 이 당시에 제자를 몇명 들이긴 했는데, 곽부와 윤가를 제외하면 모두 나중에 장사하거나 홍콩으로 이주해 적당히 먹고살았다. [[중일전쟁]]시기 곽부와 함께 은신했다가 종전이후 불산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이 [[중국 국민당]]을 때려눕히고 머륙을 따먹자 [[홍콩]]으로 이주했다. 거기서 무술관을 열긴했는데, 제자인 윤가와 곽유과 [[이소룡|갓소룡]]이 하드캐리한덕분에 명성이 엄청 올라가 안정적으로 도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편]]중독되서 수업료삥땅쳐서 아편빨고 영춘권 보존을 위해 수많은 영상자료를 남기다가 1972년 12월 1일 후두경암으로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7달 뒤, 그의 마지막 제자였던 [[이소룡]]이 죽었다. 그의 아들인 엽준은 아래의 영화를 찍을 때 자문역할을 했고 [[견자단]]형님에게 직접 영춘권을 가르쳐줬다고 한다. 여담인데 무술인을 다룬 영화의 주인공배우들은 그 무술인이 쓴 무술을 제대로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한다.(자단형님이 직접말했뜸) [[황비홍]]을 맡은 [[이연걸]]은 홍가권을 할 줄 모르고 [[취권]]찍은 [[성룡]]도 취권할 줄 모른다고 한다. 그리고 본인도 영화스케줄문제랑 겹쳐서 엽준에게 요점만 짧게 배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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