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염동진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역사인물 염동진== 본명은 염응택. [[1902년]] [[평양]]출생. [[1932년]]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정계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로서 투신하게 된다. [[신익희]]등의 추천으로 [[낙양]]군관학교에 입교함. 위에 있는 흑백사진은 이때 찍은 사진이다. 낙양 군관학교 시절 임정계 생도들에게 월급 11원을 중국 국민당이 줬다는데 이것때메 말썽이 생겼다 폭동이 발생했고 거기에 참가했다가 걸려서 런하게 된다. 난징에서 [[신익희]]의 도움을 받아 중화민국 국민혁명군에 투신하게 되었으며 우편사무국을 거쳐 헌병대로 옮겼다가 그 유명한 중화민국의 비밀결사 단체 남의사에 투신한다. 이때문에 해방 이후에도 김구계열보단 신익희 계열로 알려짐. 중일전쟁 이후 만주에서 스파이활동을 하였다는데 이때 일제에게 걸려서 모진 고문을 받아 눈이 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염동진의 반대파들은 이때 염동진이 일제에 굴복해 변절해 일본 관동군의 이중첩자 노릇을 했다고 비방하기도 했다. 해방이후 염동진은 자기가 몸담았던 남의사를 본뜬 비밀결사단체 백의사 창설에 관여하고 그 두령이 되어 좌익들을 족치고 다녔다. 김일성을 두번이나 조질뻔한 계획을 세웠었는데 한번은 김일성이 눈치를 챘는지 산정호수에 안가서 불발되었고 두번째는 수류탄을 깠는데 수류탄 던지던 놈이 실수로 안전핀을 제거하지 못했고 이를 틈타 소련장교가 목숨걸고 막아줘서 실패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한국전쟁을 끝으로 행방불명되었는데 납북되어 처형된것으로 보인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