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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가장 오래된 기록은 [[연나라]]의 [[진개]]가 고조선을 털어버리면서 이곳으로 추정되는 '패수(沛水)'의 만번한에서 고조선과 연나라가 국경을 정했다는 이야기다. 한나라 때 요동군 밑에 압록강 하구를 관리하는 '서안평현'이 설치되었는데, 이곳에는 '소수맥(小水貊)'이 살았다고 한다. 한국학계에서는 이들을 비류국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대수맥(大水貊)'의 경우는 압록강 중류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놈들을 관리하기 위해 고조선 멸망 후 현도군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원전 75년 현도군은 원주민들의 죽창을 맞고 푸순으로 도망을 갔고, 압록강 본류에서는 훗날 고구려의 조상이 될 토착민들과 부여계유이민들이 나라를 만들어서 살고 있었다. 이중에는 소서노가 살던, 훗날 고구려의 전신이 되는 졸본부여가 있었다. 고구려가 세워지고 나서는 혼강의 비류국이 망하면서 존나 빠르게 이곳의 소국들이 고구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유리왕이 압록강 본류인 국내성으로 천도하면서 고구려의 밥줄이 되었다. 근데 427년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고 나서는 일개 광역시 수준으로 망했다. 고구려가 망하고 나서 발해가 여기에 서경압록부를 설치했지만, 발해가 망하고 나서는 이곳이 철저히 파괴되었다. 그리고 이 강이 국경선이 되면서 예전과 같이 중요한 역사적 중심지가 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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