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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데르 둡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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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어릴 때인 1921년, 체코슬로바키아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저 당시 부모가 모두 사회주의자라 소련으로 이주하여 어릴 때부터 소련에서 살게 된다. 이후 2차 대전 중 레지스탕스 활동과 공산체코 수립 후 소련으로 유학가는 등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간다. 보수파던 전대 서기장이 경제정책이 폭망하자 사퇴하였도, 그는 제4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서기장이된다. 그러나 착한 공산주의자였던 둡체크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부르주아 적폐세력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때문에 다 뒤져서 새로운 단계의 사회주의 국가인 전인민국가가 출현했다며 더 이상 자유와 민주주의를 막을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개혁을 하였고 [[프라하의 봄]]이라는 역사의 한 장을 쓰게 된다. 이때 주장했던 게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이다. {{미개}} {{독재자}} {{병신}} 하지만 씹-미개한 억압통치를 좋아하던 소련은 저게 자국까지 퍼져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을 할까 두려웠다. 결국 [[브레즈네프|송충이눈썹]]은 [[땅크]]를 끌고 [[워 아이 베이징 톈안먼|"나는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을 사랑해"]]를 외치며 [[연합군대의 노래|소비에트의 나라와 헝가리, 폴란드, 불가리아]]와 함께 체코를 '정상화' 시킨다. 하지만 둡체크를 죽였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고 있던 소련은 둡체크를 체포만 한 뒤 체코슬로바키아로 돌려보내고, 이후 둡체크는 정계에서 쫒겨나 삼림 관리원으로 일하게 된다. {{끝내기}} 하지만 [[인터내셔널가|국민들은 굴레를 벗어 던지기 마련이고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오기 마련이다.]] 1989년, 고르바초프의 불간섭 하에 폴란드에서 시작된 동유럽 혁명은 체코까지 들어오게 되고, 이 때 드디어 둡체크 또한 다시 정계에 복귀하게 된다. 소련도 동유럽의 민주화를 막지 않았고, 국민적 분위기도 민주화를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마침내, 이번에는 21년 전 실패했던 프라하의 봄을, 자유와 민주주의를, 드디어 실현시킨다. 동시에 그는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열을 막기 위해 노력하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1992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끝네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열은 이루어지게 된다. 다행히도 평화로운 분열 덕에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아직도 크게 사이가 나쁘지 않고 괜찮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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