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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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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사헌부 감찰 송흥복의 아들이다. 과거에 급제해서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엘리트]]였다. 그 이후 동래부사로 발령났는데 [[일본]]의 낌새가 뭔가 이상해서 전쟁이 날 때를 대비하기 시작했다. 처음 부임하자 한 행동은 성벽을 개보수하고 성문을 다시 달았다. 그 이후 마름쇠와 능철로 기병과 보병을 처치할 함정을 만들었다. 그 이후 외부에서는 성 안을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성 주변에 나무를 엄청 많이 심었다. 그리고 송상현이 우려했던 대로 [[임진왜란]]이 터졌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직접 맞붙게 된 송상현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길을 비켜달라고 했으나 송상현은 거절했다. 이때 나온 유명한 어록이 "戰死易假道難 (전사이 가도난) 싸워서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이다. 전투가 시작되었으나 송상현이 준비를 잘한 덕분에 왜군들이 초반에 많이 고전했다. 하지만 물량의 차이가 너무 심해서 3,000명밖에 안되는 병력으로 32,000명의 왜군을 동래성에서 방어하던 송상현은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결국 동문이 무너지고 왜군들이 물밀듯이 몰려오자 송상현은 자신의 부대가 전멸할 것이라 판단하고 갑옷 겉에 관복을 입은 후 북향사배를 올린 뒤 부채에 자기 유언을 써서 남긴 후 최후의 항전을 했다. 하지만 워낙 숫적열세인지라 송상현은 전사했다. 이때 이전에 동래성에 사신으로 와서 송상현과 친분이 있던 마츠우라 시게노부가 송상현에게 서문을 열어뒀으니 도망치라고 권유했으나 송상현은 거절하고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에 감동먹은 고니시 유키나가는 마치 자신의 가족이 죽은 것처럼 송상현의 장례식을 치뤄줬다. 그리고 시신을 수습해서 고향으로 돌려보내줬다고 한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송상현을 적이지만 멋있었다며 극찬했다. 나라의 왕이 수도를 버리고 도망치는데 송상현은 그러지 않았다는 점에서 탈조센 영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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