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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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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착한문서}} [[파일:paohuthegreat.jpg]]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백성의 눈을 뜨게 한 대가로 [[시각장애|빛을 잃으셨다]]. 반도의 둘째 가라면 서러울 군주이다. 휘는 '도(祹)'. 현재 우리가 쓰는 글자의 창시자.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이 사람이 아니었으면 [[한자]]로 쓰였을 것이라서 더욱 소름끼친다. 어쩌면 [[일제강점기]]를 거쳐서 가나를 쓰게 됐을지도 모른다. 말이 문자를 따라가서 우리도 '맥도날드'를 '맥도날드'라 못 부르고 '마꾸도나루도'라고 하게 되는 걸 생각하면 닭살이 돋는다. 어쩌면 독립 후 로마자를 쓰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길디 길게 늘여 써 공간 차지를 심하게 할 것을 상상하면 약[[혐]]이다. 안녕하세요를 Annyeonghaseyo라고 써야 한다. 미쳤다. 다시 한 번 갓종니뮤께 경례. 그뿐만이 아니다. 아마 음절의 구별이 잘 안 갈 테니 하나하나 정성 들여 점이 찍혀있었을 가능성도 높으며, 로마자로 쓸 때도 많은 규칙을 지켜야만 할 가능성이 높다. 덜덜. 본래 묘호는 세종이지만 주로 세종대왕이라고 부른다. 원래 '문종'이라는 묘호를 받을 예정이었는데 그의 큰아들이 반대하여 세종이 되었다고 한다. 그 큰아들이 왕이 되어 사후 받은 묘호가 문종이다. 자기가 쓰고 싶었던 모양이다. 첫째 형 양녕세자가 공부 안 하고 담 넘고 도망가서 매 사냥이나 다니고 [[여자]]들을 [[섹스|범하고]] 다니다가 기생을 넘어 사대부의 첩까지 범하고 다니지 않았다면 세종이 [[왕]]이 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 모두 양녕세자에게 고마워하자. 참고로 둘째 형은 속세가 싫다고 집을 나가서 [http://wiki.dcinside.com/wiki/%EC%9E%90%EC%97%B0%EC%9D%B8 자연인]이 되었다. 그리하여 다음 타자인 셋째 '이도'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정도전이 만든 교육법을 이방원이 받기 싫다고 정도전을 패죽였지만 세종은 이것을 잘 따라 훗날 어마어마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한글]]의 창시자이며 사실상 조선 반도의 [[최고존엄]] 되시겠다. [[국뽕|나라 마약]]의 선두주자였으며 이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한자]]를 쓰고 있거나 베트남처럼 로마자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s>Chữ Quốc Ngữ không thành vấn đề</s>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점심 먹고 한 번 자기 전 한 번 대왕님께 오체투지의 예를 보이자. 단 하나 오점이 있다면 아들 교육이 신통치 않았는지 [[수양대군]]이 조카놈 지위가 부러워서 [[계유정난|난을 일으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른 아들놈은 다 훌륭하게 자랐는데 왜 정액 한 방울 흘린 게 일이 커졌는지 원... ㄴ 원래 자식 농사가 잘 되는 때가 있고 안 되는 때가 있다. 보통 작품에서는 세종 시대가 태평성대처럼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나라 기틀도 덜 잡혔을 뿐더러 흉년에 천재지변까지 겹쳐 백성들은 유리걸식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그걸 보고 더 많은 노력을 하셨다고. 그건 또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건 또 살찐 사람 되는 폐해가 나타났다. [[좆무위키|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책을 매우 좋아했고 부부금슬도 좋았으며 [[섹스|정을 통하기]]에 환장하셔서 조선 왕 중 가장 자손이 많다고 한다. [[문화]], [[국방|군사]], [[음악]], [[과학]], 제도 등 모든 곳을 정비하고 발전시켜 극단적인 학자들은 세종 시절에 조선의 발전은 끝났다고 하는데 세종 이후 조선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딱히 틀린 말 같지도 않다. 그나마 [[인좆]]을 비롯한 병신 같은 왕들 속에서 세종 이후에도 문종<ref>세종 치세의 절반 후반부는 마찬가지로 역대급 천재로 나온 문종이 씹하드 캐리하면서 아버지 세종의 명예를 드높였다.</ref> 성종, 정조가 등장하여 그나마 나라가 버텨갈 수는 있었다. 세종이 나오기 전 이미 발생해버린 여말선초 막장 상황 덕분에 왕조 시작 초반부터 학살질([[왕씨대학살]])에 장소 가리지 않은 내전에 인구도 존나 갈려나가고 병신 상태의 나라가 존나 씹하드 캐리 되고, [[인조]] 같은 병신에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이 있었음에도 [[조선]]이라는 나라가 버틸 수 있었던 까닭은, [[세종대왕]]이 캐리하고 이후로도 나라 좀 잘 되고 너네들 잘 좀 살라고 다섯 수 앞서 만들어 놓은 정책들 때문이다. 식습관 때문에 [[당뇨병]]에 시달렸고, 어른들의 사정으로 성병도 앓았다고 전해진다. 재위 마지막 10여년 간은 당뇨 합병증으로 인해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때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도대체 어케 했노 ㄷㄷ 그러나 [[당뇨병]]은 야사로 전해지던 것이고,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말년이 되니까 머리가 깨질만큼 아팠다고 한다([[네이버 웹툰|전자통신 만화 사진첩]]의 [[조선왕조실톡|왕조실대화]]의 고증오류를 정리한 것을 보자). :사서에 적힌 것을 조합하면 당뇨 증세 나온다고 하는데 당시 조선은 [[한의학]] 신봉국이라 당뇨라고 적히지 않은 것 뿐이지.(소갈증으로 적힌 것으로 기억한다) 건강이 좋지 못하니 아들 문종 또는 황희 등 재상에게 자주 국정을 대리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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