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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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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때는 1994년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도 여전히 인기 없던 [[K리그]]에서 축구행정가들과 K리그 팬들의 유서깊은 [[종특]]인 '''이러 이러 해서 [[프로축구]]가 인기 없고 흥행이 안 된다는 대형 핑계거리'''가 스물스물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1994년 당시 K리그는 [[서울]] [[동대문운동장]]을 연고로 한 일화 천마(현 [[성남 FC]]), LG 치타스(현 [[FC 서울]]), 유공 코끼리(현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 유나이티드]])의 3개 구단, 영남권 3개 구단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 현대 호랑이(현 [[울산 현대 축구단]]), 포항제철 아톰즈(현 [[포항 스틸러스]]), [[전북 버팔로]]가 참가하여 호남권 1팀이 늘어 총 7개팀이 되었는데 빅마켓인 수도 서울에만 총 3개팀이 몰려 있어서 흥행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K리그]]에 대도시-빅마켁, 중소도시-스몰마켓 이렇게 비즈니스 관점으로 구단 프랜차이즈 연고지를 바라보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로 그 전까지 축구행정가들의 마인드는 프로야구와 안 겹치고 지방 중소도시에 문화적 혜택이 떨어져서 볼거리가 없어야 경기 한번 열리면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시골 마을잔치 마냥 사람들이 몰릴거라는 패배주의와 지방 중소도시 사람들은 볼게 없기 때문에 축구장을 찾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마인드는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서 내셔널리그 홈페이지의 리그 소개문구를 보면 9번째에 아직도 아래처럼 지방 중소도시는 축구열기가 높다는 아무 근거 없는 얘기가 쓰여져 있다.<br/> '''[http://www.n-league.net/national_league 축구열기가 높은 지방중소도시는 언제든지 팀창단이 될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서울과 같은 대한민국 최대 빅마켓인 수도 서울에 연고팀이 2개밖에 안 되어서 [[K리그]] 흥행이 안 된다고 핑계를 되지만 당시에는 최대 빅마켓 수도 서울에만 3개팀이 몰려 있고 그 외에 당시 축구행정가들 말대로 문화적 혜택이 떨어져서 프로축구가 충분히 먹힐 수 있다고 여겨지는 지방 중소도시 연고팀들이 별로 없어서 프로축구가 흥행이 안 되고 망해간다는 핑계를 되고 있었다.(아마 다시 수도 서울에 3개팀 이상되면 또 서울에만 팀이 많아서 흥행이 안 된다고 다시 이 핑계거리를 될 수 있으니 잘 기억해 두자) 당시 이 핑계거리에 힘을 실어준 곳은 옆동네 일본으로 1993년 [[J리그]]를 출범시키면서 도쿄 연고지 구단 없이 즉 공동화된채로 J리그 붐을 일으켰었다. 그리고 이걸 한국축구 행저가들이 벤치마킹을 했는데 사실상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겉으로 보여지는 현상만을 보고 파악한 성급한 판단이었다. 왜냐면 1993년 J리그 출범시 도쿄 연고지 구단 없이 출범한 것은 지극히 당시 일본내의 특수한 상황으로 표면적으로 당시 도쿄에 프로축구를 할 수 있는 경기장이 도쿄국립경기장 하나였고 국립경기장이라 특정 구단이 독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표면적 이유 이외에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갈등 때문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J리그 연맹의 수장이었던 가와부치 사부로가 당시 일본 프로야구의 흥행을 책임지고 이를 발판으로 리그 행정에까지 간섭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극협하던 사람으로 [[J리그]]에 '거인군은 필요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프로야구처럼 도쿄 연고지를 기반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처럼 전국구 인기 구단이 될려는 포부를 가졌던 요미우리 축구단 (현 [[도쿄 베르디]])를 견제하였다. 또한 역시 기존 JFL 시절 연고지인 도쿄 연고지를 그대로 가져갈려고 했던 미쓰비시 축구단 (현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에 우라와 연고지를 추천하였다. 결과적으로 가와부치 사부로 의도대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처럼 전국구 인기 구단이 될 가능성이 있는 도쿄 연고지 구단을 만들지 않은채 1993년 J리그가 출범하는데 성공하였다.) 즉 J리그에서도 도쿄라는 일본 최대 시장의 빅마켓 연고지 구단을 당연히 만들고 싶었했다는 것이고 도쿄 국립경기장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도쿄 연고지가 공동화 된 것으로 수도이자 최대 빅마켓인 도쿄를 아무 이유없이 공동화 시키는 그런 저능아스런 행정을 한게 아니었으며 일단 국립경기장 외에 J리그 기준(1부리그 15000명 2부리그 10000만명 수용구장)에만 부합하는 경기장이 생기면 그 때는 문제 없이 도쿄 이전이 가능했고 실제로 2001년 도쿄 스타디움이 개장한 것과 동시에 도쿄 베르디와 FC 도쿄가 도쿄 입성에 성공했다. 또한 1993년과 1994년 J리그 버블 시대의 인기는 도쿄 연고지 구단의 유무와 아무 상관없는 신장개업빨이었으며 도쿄 연고지 구단은 없었더라도 도쿄 국립 경기장에서 중립 경기로 매주말 J리그 경기 열렸기 때문에 도쿄 연고지를 공동화해서 J리그가 흥행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한국 축구행정가들이 J리그에서 무슨 대단히 전략적인 의사결정으로 도쿄 연고지를 공동화 시킨 것인 줄 착각을 하고 이것이 J리그 흥행을 일으킨 흥행요소라고 생각하고 벤치마킹을 한 것이다. 하물며 당시 서울에는 동대문운동장, 목동운동장, 잠실올림픽주경기장 이렇게 J리그에서 부러워할만한 경기장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었으니 얼마나 병신짓 중에 병신짓을 한것인지 알것이다. 그런데 이 미친 K리그 축구행정가들은 공동화 시키면서 조선으로 무려 축구전용경기장을 지으면 서울로 돌아올 수 있다는 되도 않는 개씹소리를 시전했다. 머한 축구전용구장들 중에 그나마 작은 창원 축구센터, 숭의아레나가 1100억원이 들어갔는데 씨발 그나마 머한 프로스포츠들 중에 가장 자금력 빵빵하다는 빠따도 구장 지을 때 구단 부담금이 300~400억 선인 판국에(이것도 2010년대 중반 들어서나 가능) 뭐 씨발 대놓고 축구전용구장을 지어서 들어오라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체 이 병신새끼들은 공 대신 양심을 뻥뻥 차고 놀았던건가 싶다. 그러면 개축리그가 처음부터 병신같이 시작한 이유도 납득이 가지. 당시 J리그에 돈 벌로 온 지코, 리네커, 스토이코비치 이런 퇴물 스타들과 1992년 아시안컵 우승 그리고 미우라, 라모스, 나카야마, 다카기, 기타자와 등의 황금세대 출현으로 과거와 달리 부쩍 강해진 축구 대표팀 인기를 발판으로 한 거품인기가 존재했다. 한마디로 일본 수도이자 최대 빅마켓인 도쿄 연고지 구단이 없어서 J리그가 흥행 대박을 터트린게 아니고 당시는 거품인기로 K리그 원년에 했던것처럼 일본에서 전 구단 연고지 없이 유랑극단처럼 리그를 돌렸어도 인기가 있었을 시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거품을 제외하고 생각해봐도 인프라가 개좆망이라 그렇지 기본적으로 JSL 시절부터 지역연고제와 기업구단 참가라는 토대는 잘 갖춰졌던 게 일본 축구였다. 그렇게 기업들의 대대적인 참가가 있었으니까 퇴물스타들의 영입도 가능했던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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