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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가 찬양한 대상== 당대 최고의 비판적 지식인이지만 그가 찬양한 것도 몇 개 있다. 다만 이것들을 찬양한 이유는 볼테르답게 다른 것을 까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 [[영국]] - 프랑스에서 귀족과 시비가 붙었다가 쫓겨난 이후 볼테르는, 명예혁명 이후 당시 유럽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영국을 이상화하여 프랑스를 비판하는 <철학 서간>을 냈다. 여담이지만, 볼테르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루소]]는 영국을 두고 "[[헬조센|선거철에만 주인이 되었다가, 선거 뒤에는 노예가 되는 나라]]"라고 비판했다. 이후 [[프랑스 혁명]]도 영국식 의회민주주의를 추진하려는 온건파와 공화제를 추진하려는 급진파로 나뉘어 한바탕 싸웠다. * [[중국]] - 중국을 기독교 없이도 윤리적으로 돌아가는 사회라고 이상화하여 유럽과 기독교를 간접 비판했다. 볼테르 같은 똑똑한 사람이 [[헬지나]]를 떠받들었다는게 지금 기준으로 보면 웃기는 일이지만, 볼테르 생전 중국은 삼국지같은 좆짱깨스러운 한족국가 스러운 시기의 모습이나 지금의 세계 문명발전 문화수준 평균도 못따라가는 짱꼴라 씹미개국이 아닌 만주족 청나라의 역대급 성군인 [[강희제]]-[[옹정제]]-[[건륭제]]로 이어지는 자타공인 황금기였다. 특히 강희제는 중국대륙 역사상 수백명 왕들 중에서도 넘버원으로 평가받는 성군중의 [[성군]] 이었다. 게다가 당시 유럽인들이 중국의 실체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그냥 지들이 보기에 좋아보이는 것만 취사선택하는 경향도 있었다. 7~80년대 유럽과 미국의 히피들이 소련의 실체를 알지 못한채 그저 "다같이 잘먹고 잘산다"라는 겉껍데기만 보고 소련과 공산주의를 존나 빨았던 것과 비슷하다. * [[뉴턴]] - 뉴턴은 프랑스 계몽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 [[과학자]]로 꼽히는데, 특히 볼테르가 뉴턴의 과학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뉴턴의 사과' 일화도 볼테르가 만들어 낸 이야기라는 주장이 있다. 볼테르의 애인이었던 에밀리는 뉴턴의 대표 저작인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의 해석본을 내 18세기 유럽 과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 [[공자]] - 볼테르는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를 두고 "공자의 언행은 그리스 철학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도덕철학의 보고다. 공자는 덕과 학식이 뛰어났고 신의 섭리에 의해 중국에 선물된 사람이었다. 그는 그리스도가 유럽에서 받는 것과 똑같은 대우를 중국에서 받는다."라고 평가했다. 앞에서 중국을 찬양한 것과 비슷한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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