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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조선]] 시대의 연좌제. 그리고 오늘날의 서울 공화국을 만든 여러가지 원흉 중 하나로 꼽힌다. 반란이나 봉기가 일어난 지역을 반역의 땅으로 정해버리고 유무형의 불이익을 주는 훌-륭한 제도다. 반란을 주도한 자와 추종자들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참수하고, 그들의 처첩과 자녀는 노비 신분으로 강등하여 공신의 노비로 삼고, 사유 재산은 국가가 전부 몰수하고, 반란 주동자가 태어난 고을이나 반란이 일어난 고을을 제일 낮은 등급으로 강등했다. 반란이 일어난 고을의 수령도 같이 모가지가 날아간다. 고을의 강등은 이를테면 충주목이 현으로 강등되거나 아예 이름을 바꿔버리는 식이었는데 가끔은 도 이름이 바뀌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영조 때는 전국적으로 봉기가 일어나는 덕분에 전[[나주시|라]]도 → 전[[광주광역시|광]]도, 강원도 → 강[[춘천시|춘]]도, 충청도 → [[공주시|공]][[홍성군|홍]]도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반역향으로 낙인 찍히면 해당 고을 출신 인물들은 당연하겠지만 관직으로 나아가는데 불이익을 받는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1523 여기에서 일부 참고함] 여기서는 가장 유명한 사례들만 적는다. 세세한 사례 일일이 적으면 끝이 없는데 앞의 [[링크|젤다]]에서 좀 더 자세히 묘사하고 있으니까 할 거 없으면 읽어보자. 그냥 지금의 북조선을 상상하면 된다.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보면 알겠지만 반역향 지정에는 정치적 이유가 어느 정도 섞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함경도]]: 도 전체가 반역향으로 지정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계유정난으로 세조가 집권하면서 당연히 제일 먼저 해낸 일은 김종서를 비롯한 단종의 측근 세력을 쓸어버리는 것이었다. 한편, [[이징옥]]은 김종서가 추천(천거)했던 인물인 까닭에 한동안 함길도(함경도) 도절제사를 지내기도 했지만 당연히 세조 집권을 계기로 잘렸다. 결국 이징옥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이때는 반역 세력 내부의 배신으로 사실상 흐지부지됐다. 이때는 명목상 [[영흥군]]에 그치는 수준이었지만 훗날 [[이시애의 난]]이 한 번 더 있으면서 도 전체가 반역향으로 선정되었고 주민들의 외지 이주가 금지되는 수모를 겪었다. #[[충청도]]: 을사사화로 인해 대윤(윤임) 세력의 모가지가 날아갔는데 그중에서 이약빙은 윤임과 가깝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2년 뒤 과천(現 서울특별시 서초구)의 양재역에서 '위로는 여주(女主), 아래에는 간신 이기(李芑)가 있어 권력을 휘두르니 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된 익명의 벽서가 발견되었고 이는 명종의 귀에 들어간다. 이를 양재역 벽서 사건이라고 하는데, [[윤원형]] 등의 소윤은 을사사화 때 대윤의 모가지를 제대로 썰지 않고 살려둬서 일어난 일이라며, 윤원형을 한때 탄핵하는데 공을 세웠던 송인수와 이약빙에게 사약이 내려졌고 대윤 일파 20여 명이 유배를 가게 된다. 20년 뒤 선조가 즉위하고 나서 벽서 사건은 무고 사건이라고 공인이 되었지만 그동안 충청도는 이름이 바뀌는 수모를 겪었다. 물론 이것 외에도 충청도 이름이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였다. #[[전라도]]: 수험생들의 원쑤로 잘 알려져 있는 송강 [[정철]]께서 정여립이 반란을 도모했다(정여립의 난)고 신고했다. 그리고 선조는 당연히 쓸어버리라고 명령을 내렸고 정철은 호남 지역에서 주둔하던 동인 세력을 쓸어버리는 일을 주도(기축옥사)하게 되면서 서인이 정치 주도권을 잡게 된다. 다만 정여립이 실제로 반란을 도모했는지는 아직도 논란이 있다. 3년 뒤 임진왜란 때 왜구 소탕에 앞장 섰다는 공로로 반역향 신세에서 곧 풀려났다. #[[황해도]]: 광해군 때 대북 세력이 소북 세력을 찍어버리려고 만들어낸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해주목이 강등되고 (연안도호부의 이름 앞 글자를 따서) '황연도'로 한동안 이름이 바뀌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해주에서 태어난 [[능양군]]이 왕좌를 차지하면서 황해도로 돌려졌다. #[[경상도]]: 노론이 지지하던 영조가 왕이 되면서 힘을 잃은 소론이 이러쿵저러쿵 계획을 세우고 난(이인좌의 난)을 일으켰다. 물론 난은 결국에 진압되었다. 이때부터 영남 유림들은 아주 먼 훗날 흥선대원군이 '세도 정치를 타파하기 위해서 인재를 고루 뽑겠다'는 이유로 탕평 인사책을 펼칠 때까지 과거 대과에 응시하지 못하는 설움을 겪었다. 사실상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찬밥 대우를 받은 셈이다. #[[평안도]]: 조선이 건국되기 한참 전인 [[고려]] 중기에 [[묘청]]의 난이 일어나면서 사실상 준반역향으로 취급 받기 시작했고 [[조위총의 난]]을 계기로 도 전체가 엠창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평안도는 이후 몽골, 홍건적, 여진족 등의 침공으로 여러 번 초토화되었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차별 당했다. 평안도에서 거두어들인 세금으로는 명, 청에서 방문한 짱깨 사신들의 접대 비용으로 충당했고 평안도라는 이유로 다른 지역 출신에게 승진 순서가 밀리는 등의 불이익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였다. 또한 함경도, 전라도와 더불어서 유배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는데, 유배를 많이 가면 지역 이미지가 좋아질 리가 없지. 그 덕분에 조선시대의 평안도는 지역 이미지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표본이 되었다. [[세도정치]] 시기에는 세도가에게 가장 많이 삥도 뜯겼고. 결국 이런 불만이 쌓이고 쌓여서 건국 400년 만에 [[홍경래의 난]]으로 제대로 터지고 말았다. 집에 있다면 역사 교과서를 한 번 펼쳐봐라. 평안도 출신 양반이나 사대부가 당장에 한 명이라도 나오나. 있다고 해봐야 반역에 연루되어서 몰락하고 서울에서 쫓겨나거나, 정년 채우고 은퇴한 할배들이지. 결국 대부분이 반역지로 찍히면서 사실상 청렴한 땅은 경기도와 그 외 몇 군데밖에 안 남게 되었다. 경기도에서도 부평과 가평이 반역향으로 전락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도 전체가 반역의 동네로 지정된 적이 없을 뿐. 굳이 이게 아니더라도 수도를 중심으로 발전하는 건 전형적이지만 헬조선이 이렇게 심각해진 건 조선의 이 악습 때문에 다른 지역은 불이익을 겪고 서울 근교만 이득을 보게 됐으니 당연하겠다. 서울 공화국보다 심한 게 저 윗동네다. 남쪽은 서울보다는 작아도 부산 해운대, 대전, 대구 등 괜찮은 도시가 있지만 북쪽은 평양 말고는 도시라고 할 게 있냐? 탈조선한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북쪽으로는 하지 마라. 북으로 탈조선하느니 차라리 [[한강 정모]] 해서 [[천국]]으로 탈조선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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