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배경 == {{대한역사}} [[File:한반도 일러스트.png|thumb|right|368픽셀|임시정부 당시 명목상 영토였던 한반도. 그러나 해방 후 미군정과 소련군정으로 나뉘고 결국 미군정 지역이었던 남쪽만 국가 승계를 받아서 정부가 수립되었고 남은 소련군정 지역은 북한이라는 나라가 새로 설립되고 현재까지 그렇게 분단 된 채로 이어져 왔다.]] 3.1 운동의 전국적 폭발적 호응에 더불어 국민들의 독립의 염원을 확인한 독립운동가들은 각각의 독립 운동을 조직적으로 하기 위한 통합된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임시정부를 창설한다. 대한국민의회와 신한청년단의 합작으로 이뤄졌다. 설립 당시 무장투쟁론자들은 만주/연해주에 창설할 것을 주장했고 외교독립론자는 상하이에 창설하기를 주장했다. 무장투쟁론자의 의견에 따르면 두만강은 강폭이 좁고 겨울이 되면 100% 꽝꽝 얼기 때문에 언제든지 기회를 봐서 국내로 진공하기에 유리하다는 점을 근거로 연해주에 정부를 세우자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외교독립론자의 의견을 수용하여 상하이에 세우는 걸로 결론이 난다. 사실 [[대한광복군 정부]]가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보면 뻔했다. === 왜 하필 상하이? === 사실 이건 고교 역사 과정까지는 배우지 않는 심화된 내용이라서 알 필요는 없다. 국외에 세운 이유 정도만 알고 있어도 충분하다. 당시 상하이는 일부는 영국, 일부는 일본, 일부는 독일, 일부는 벨기에, 일부는 프랑스, 일부는 미국 등 세계 여러 열강들에게 조차된 상태였다. (조차된 땅을 조계지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상하이라는 지역은 갈가리 나눠진 상황이었는데 다르게 말한다면 상하이는 여러 국가들이 모여있는 곳이었으니까 외교 활동에 매우 유리했다. 그래서 외교독립론자들에게 있어서 상하이 선택은 당연한 것이겠다. 다만 영국이나 벨기에 같은 경우는 일본에 우호적이었고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 통치에 관하여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나라였다. 예를 들면, 일본이 조선에 세웠던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영국이 인도에 세웠던 동인도 회사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임시정부는 일본과 대립, 적대 관계에 놓여있었던 프랑스의 조계지에 세워졌다. 영국, 미국 등 일본과 우호 관계에 놓여있던 국가의 조계지에 세울 리가 있겠나.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