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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통수}} {{해적}} {{왜란}} {{노답}} 역사적으로 [[왜구]]들의 땅이었다. ㄴ[[왜구]]들과 [[일본]]을 같은 취급하기도 하는데 애초에 왜구와 일본은 문화가 공유된다는 점만 빼면 근본부터 달랐다. 즉 혈통,문화만 같은 다른 나라 취급 그 이상이었다. [[부산]]과 거리도 가까워서 심심하면 쳐들어옴 그러다가 고려시대에 박위, 조선시대에 [[이종무]] 땅크한테 진압당했다.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때는 대마도주의 항복을 받아내기도 했는데 승전이다 패전이다 말이 많다. 그러니까 이종무가 이 지역을 정복하긴 했는데(빈집털이였지만) 더 이상 노략질 안하고 조선 조정에 입조하고 매년 조공을 바친다는 조건으로 땅을 돌려준 것이다. 즉 세종 시기에는 정벌로 조선제도에 편입된 것이 맞다. 이후 대동여지도에도 대마도도 포함되서 그려졌고. 하지만 이런 역사적인 사안이 지금 대마도를 반환받아야된다 라던가 그런 의미로 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중국내 만주 조선족자치구 지역하고의 문제와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사실 조선 입장에서는 당시 전근대 사회에서 영토를 차지했을때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농경지로써의 가치가 있느냐였는데 대마도는 농경지로써의 가치가 단 1도없는 씹쓰레기 땅이라서 조선 입장에서는 복속시켜봤자 얻을것이 1도없는 쓰레기땅이었기에 대토벌로 혼쭐만 내주고 편입시킨다는 생각은 안했다. 대마도를 조선영토로 편입시킨다는건 대마도 주민들도 조선인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인데 그러면 먹여살려야하는 백성들만 더 늘어나고 조선 입장에서는 1도 쓸모없는 땅이었다. 당장 조선땅이던 [[제주도]], [[울릉도]], [[독도]] 주민들이 조선시대때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생각해보자. 이는 당시 일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마도는 일본 본토에서 존나 떨어진 섬인데다가 심지어 일본보다 조선이 훨씬 더 가깝다. 일본 역시도 자기 본토의 백성들 먹여살리기도 바쁜데 저 멀리 떨어진 대마도를 먹여살린다? 가뜩이나 일본 역사는 대부분이 중앙집권화가 되지 못한 지방분권화 성향이 강한 역사인데 대마도는 그냥 많고 많은 섬들 중 하나이고 심지어 농사도 안되는 씹쓰레기 땅이므로 걍 버리다시피했다. 결국 대마도주민들은 두 나라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 다른데로 피신하거나 조선에서 노략질로 먹고살거나 조선 조정에 빌붙어서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주워먹으며 연명했다. 실제로 조선 조정에서는 얘네들을 존나 귀찮아했고 걍 무시하고싶어했는데 [[삼포왜란]]처럼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조선입장에서도 존나 귀찮아지므로 그냥 [[부산]]에 [[왜관]] 세워주고 거기서 알아서 먹고자고 무역도 할 수 있게 허락해주는걸로 적당히 합의봤다. 이 외에도 서울 동평관이나 울산, 거제 등에도 원래 15세기만 해도 왜관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터지면서 싹 다 없어졌다. 근데 임진왜란 이후에도 대마도주가 계속 끈질기게 조선 없으면 대마도 사람들 다 굶어죽는다고 빌붙어서 부산에는 계속 왜관 설치해서 살게해줬다. 근데 이새끼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간이 배밖으로 나왔는지 부산이 자기 나와바리인것마냥 행사하기 시작하며 왜관이 너무 좁다고 다른곳으로 자꾸 새로 지어달라고 떼를쓰기도 하고 심지어 조선정부가 무시하니까 스스로 자기 집에 불을 질러서 이제 살곳이 없으니까 이주시켜달라고 떼쓰기도 했다;; 일본이 독도어그로로 국내 정권유지에는 득보지만 국제외교에선 득보다 실이 많음을 볼 때 편백나무 좀 자라는 것 빼면 자체적인 산업-경제적가치가 종범한 이 지역을 굳이 요구해봤자 득보다 실이 많은 것. 이걸 가지고 이승만때 대마도 반환을 요구했으나 존나 약소국이 하는 개소리로 들려서 국제사회에 씨알도 안먹혔다. 솔까 대마도가 한국땅이라는 주장이 존나 설득력이 딸리는 건 쓰시마 역사만 봐도 안다. 9세기 헤이안 시대에 일본 조정의 명으로 아히루씨가 쓰시마로 건너와서 토착민들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아히루씨는 출신이 일본 간토의 가즈사, 그러니까 지금의 치바현이다. 13세기까지 이어지던 아히루 씨의 통치는 일본 조정이 아히루 씨를 역적으로 규정하여 토벌하면서 끝났는데, 역적으로 규정한 이유가 당시 국교가 없던 고려랑 무역을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당시 고려는 무신정권 최우의 집권기로 대몽항쟁 시기였었다.) 이때 규슈에서 소 씨가 건너와 아히루 씨를 토벌하고 대신 대마도를 다스리게 되었다. 소 씨는 뭐 헤이시라는 말도 있고 고레무네우지라는 말도 있지만 아무튼 규슈 출신 일본인이다. 이후 소 씨는 한반도랑 무역도 하고 약탈도 하고 고려나 조선의 정벌에 털리기도 하면서 대충 대마도를 지배해오다, 조선 임금이 대마도 다이묘인 소씨에게 예조좌랑의 벼슬을 주고 조선과 일본의 무역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줬다. 그래서 대마도 다이묘는 농토가 일절 없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상대로 버는 돈을 감안해서 [[고쿠다카]]는 60만 석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대마도 다이묘는 조선으로부터 연금 생활자가 되었다. 그런데 [[소 요시토시]]가 [[다이묘]]를 하던 시기인 1500년대 후반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군 일부로 한반도에 들어왔다가 히데요시가 죽고 왜란이 종결되면서 다시 원래 하던대로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령에 의해 소 요시토시가 7년이나 조선에 사과를 한 끝에 조선과 화해하고 대마도 다이묘는 다시 조선이 주는 연금을 받아먹고 살게 된다. 그러다 20세기에 조선이 일본에 병합된 후, 가문의 당주인 소 다케유키 백작이 덕혜옹주랑 결혼했다. 생각해 보자. 일본 출신 지도자가 섬을 지배했고 일본 중앙정부의 뜻에 따라 갈려나가기도 했으며(고려와 조선의 대마도정벌은 결국 소 씨를 갈아치우지 못했다는 점과 대조된다.) 심지어 일본 중앙정부의 명을 받아 한반도 침략전쟁에 참전했다. 아히루 씨가 대마도로 건너온 이후부터 치더라도 이런 상황이 유지된 게 1100년 정도 된다. 시발 근데 어떻게 대마도가 한국 영토냐? 아히루 씨 이전부터도 대마도는 왜인들이 지배했다는 정황이 명백하다. 이미 3세기에 일본인들이 대마도에 성곽을 쌓고 거점을 마련했다는 기록이 있고, 그 이후에 딱히 한반도인들이 건너가서 정복했다거나 하는 정황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까 결국 일본의 대마도 지배는 1700년된 지배라는 얘기다. 한반도 국가의 제주도 지배나 우산도 지배보다 훨씬 오래된 게 일본의 대마도 지배다. 양속관계? 조공? 씨발 동아시아에서 무역을 하려면 원래 조공체제에 편입되어야 하는 거니까 그런 거고. 그걸 가지고 실질적인 종속관계를 판별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중국과 한국의 조공관계에 대해서는 백번 이렇게 말할 새끼들이 왜 대마도에 대해서는 헛소리하고 있냐? 대마도주가 조선에 칭신했다는 이유로 대마도가 조선 땅이라고 하면 당장 말이 안 되는 게, 안용복 사건에서 조선 조정의 행태를 설명할 수가 없다. 대마도주는 조선 조정에 사신까지 보내가며 조선의 뜻과는 달리 일본의 울릉도 영유권을 강력히 주장하였으며, 조선은 이러한 반역행위(?)를 추궁하기는 커녕 대충 얼버무리려 들었다. 끝까지 뻗대던 대마도주를 굴복시킨 건 조선 조정이 아니라 안용복이 얻어낸 일본 에도막부의 명령이었다. 막부에서 울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해 주자 그토록 기세등등하게 항의하던 대마도주가 깨갱하고 수그러든 것이다. 대마도가 조선령이라고 주장하려면 대마도주가 조선 조정에는 땡깡을 놓다 막부의 일침에 쭈그러드는 꼬라지부터 어떻게 설명하고 와야 할 것이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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