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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 == 동방(東方)에는 최초에 군장(君長)이 없었는데, 신인(神人)이 단목(檀木) 아래로 내려오자 국인(國人)이 세워서 임금으로 삼았다. 이가 단군(檀君)이며 국호(國號)는 조선(朝鮮)이었는데, 바로 당요(唐堯) 무진년이었다. 처음에는 평양(平壤)에 도읍을 정하였다가 뒤에는 백악(白岳)으로 도읍을 옮겼다. 상(商)나라 무정(武丁) 8년(서기 전 1317) 을미(乙未)에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다. [신등은 살펴보건대,] 고기(古紀)에 이르기를, ‘단군이 요(堯)와 더불어 무진년(戊辰年)에 함께 즉위하여, 우(虞)나라와 하(夏)나라를 지나 상(商)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乙未)에 이르러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는데, 1천 48년의 수명을 누렸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의심스럽습니다. 지금 살펴보건대, 요 임금이 즉위한 것은 상원 갑자(上元甲子)인 갑진년에 있었는데, 단군의 즉위가 그 후 25년 무진년에 있었다면 ‘요와 더불어 함께 즉위하였다’라고 한 것은 잘못입니다. 당(唐)나라와 우나라로부터 하나라와 상나라에 이르러서는 세상 인정이 점점 야박해져서 인군(人君)이 나라를 오래도록 향유한 자가 5,60년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찌 단군만이 홀로 1천 48년의 수명으로 한 나라를 향유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 말이 꾸며낸 것임을 알겠습니다. 전배(前輩)가 이르기를, ‘그 1천 48년이라고 한 것은 곧 단씨(檀氏)가 대(代)로 전하여 지나온 햇수이고, 단군의 수명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근세(近世)에 권근(權近)이 천정(天庭, 명나라)에 들어가 뵈니,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가 권근에게 단군을 시제(詩題)로 하여 시(詩)를 지으라고 명하였는데, 권근의 시에 이르기를, ‘세대(世代)를 전한 것은 얼마인지 모르나 역년(歷年)은 일찍이 천년(千年)을 지났다. '傳世不知幾 歷年曾過千’라고 하니, 황제가 보고 옳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의논에서도 권근의 말한 것이 옳다고 하였으므로, 우선 보존하여 뒷날의 참고에 대비하도록 합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위서(魏書)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 왕검(檀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朝鮮)이라 불렀는데 요(堯)와 같은 때였다. 라고 하지만 정작 위서(魏書)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사실 그위서가 [[정사 삼국지]]의 일부인 위서가 아닌 다른 역사책인 위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으나마 위략이 남아있었다면 어째어째 해볼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위략도 주석만 남아있는 수준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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