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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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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1925년]] [[1월 16일]]~[[1979년]] [[10월 7일]]<ref>실종으로 공식화된 날짜가 이 날이므로 법적인 사망 간주일은 이 사건이 국가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 판단한다면 1980년 10월 7일, 일반적인 실종으로 판단한다면 1984년 10월 7일이다. 다만 국가 개입설은 국정원 측의 공식 피셜로 1979년 10월 7일 당일에 살해되었다고 언급했으므로 1979년 10월 7일 또는 1984년 10월 7일이 가능한 법적 사망일이 된다.|(?)</ref> 그 옛날 [[박정희]]에게 충성을 다했던 [[중앙정보부]]장. 덩치도 크고 아주 무서웠다 카더라. 그래서 별명이 "날으는 돈까스", "'''남산 멧돼지'''"였다고 한다. 남산 위에 저 돈까스 철갑을 두른 듯~ 하는 짓이 귀축스럽기 그지 없어서 자기 꼬붕들을 시켜 [[김영삼]]에게 초산을 던지는가 하면, 7대 대선이 끝난 몇달 뒤 야당쪽 후보였던 [[김대중]] 슨상님의 장남 [[김홍일]]을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배후 혐의로 남산으로 끌고가 고문을 자행했다. 그리고 또 [[일본]] [[도쿄]]에 있는 [[김대중]] 슨상님을 납치하여 현해탄에 빠뜨려 죽이려고 하였으나 "헤이 정희! 돈 두 댓!"을 외친 [[천조국]]에 가로막혀 김머중 납치 작전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 사실 두, 세 번째 사건은 다다음 [[중앙정보부]]장 "'''제갈조조'''" [[이후락]]이 뒤에서 조종한 것이다. 1970년대가 되기 작년인 1969년 [[3선 개헌]] 국민투표 통과로부터 사흘 후 김형욱은 버림받았다. 그리고 31명의 순수한 청년들을 공규 중위의 직책으로 꼬드겨 [[684부대]]같은 것들을 만들기도 했다. 아무튼 이후 박정희에게 열받은 김형욱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가루가 되도록 다까끼를 까는데, 덕분에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당해서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설이 다양한데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파리]]의 양계장에서 사료 만드는 기계에 박아서 갈아 죽여버렸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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