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김성갑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소개 ==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85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다. 타격은 평균 이하였지만 준수한 수비와 통산 볼삼비가 0.9:1인 준수한 선구안과 전성기때는 매년 두자릿수 도루를 기록할만큼 준수한 주력을 가진 3툴 플레이어였다. 즉 타격빼고 다 잘했다. 근데 타격도 염경엽 따위와 비교하는건 실례일 정도로 전성기때는 평타치는 했다. 고향팀에서 1시즌을 보냈는데 개막전에도 출전하는 등 희망이 넘쳤으나 출전기록은 11경기에서 멈췄고 그 이후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중 1986년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했을 때 팀 구성을 위해 기존 6개 구단에서 지원한 전력보강 선수로 지정되어 투수인 [[성낙수]]와 함께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하여 고향팀을 떠나게 되었다. 빙그레에서는 뛰어난 선수는 아니지만 없어서는 안될 소금같은 존재로 이글스의 정규시즌 깡패에 일조했다. 이후 [[김영덕]]감독과의 불화로 1991년 시즌 전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 2,100만원에 [[트레이드]] 되었다. 1995년 [[태평양 돌핀스]]에서 2루수 부문 올스타에 선정되어 사직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참가했고, 그 해에는 현역 시절 중 1군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그 해를 마지막으로 [[태평양 돌핀스]]가 인수되어 [[현대 유니콘스]]로 바뀐 후 현역에서 은퇴하고 1996년부터 [[현대 유니콘스]]의 창단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98년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하여 잠시 [[서울고]] 야구부의 [[인스트럭터]]를 맡은것 외에는 단 한번의 팀이동 없이 코치생활을 하고있다. 2009년 시즌 후 1군코치로 승격되었고, 2010년 시즌 후 2군 감독직에 올랐다. 2011년, 원래는 [[넥센 히어로즈]]의 2군 감독으로 시즌을 시작했다가 시즌 중 1군 [[수비코치]]로 부임하면서 [[박흥식]]에게 2군 감독을 넘겼다. 그리고 시즌 후 [[이광근]] [[수석코치]]의 [[SK]] 이적과, 2군의 [[이명수]], [[정명원]] 코치가 [[두산]]으로 이적함에 따라 1군 수석코치로 임명되었다. 2012년 9월 17일 뜬금없이 [[김시진]][[감독]]이 경질되면서 [[감독대행]]을 맡게 되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용덕]] [[한화 이글스]] [[감독대행]] 못지않게 [[감독]] 경질로 어수선해진 팀 분위기를 어떻게든 추스리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깊게 보인다. 2013년 또다른 짠물 수비의 전설이자 국내 프로야구계 멘도사 라인의 종결자였던 [[염경엽]] 감독체제로 들어서면서 2군 감독직으로 복귀했으며, [[화성 히어로즈]]로 2군 팀이 새로 발족된 후에도 2군 감독을 맡고 있다. 2군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던 [[박정준]], [[지석훈]], [[차화준]] 등을 트레이드하여 앞길을 틔워 주는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열악한 상황 속에서 2군을 잘 이끌어 8월 11일 현재 남부리그 1위에 퓨처스리그 승률 1위로 끌어올리고 있었으나 막판에 상무에 역전을 당하여 55승 6무 39패 (승률:0.585)를 거둬 남부 리그 2위로 마감하였다. 2015년 10월 19일 SK 구단은 김성갑 코치를 영입하고 1군 수석코치로 임명했다. 2018 시즌 후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우승 후 사임했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