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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납치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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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립의 관점 == {{진실}} {{가운데}} [[1973년]] 8월 8일, [[박정희]]의 총애를 받고 싶었던 [[이후락]]이가 [[김대중]]이 [[일본]] [[도쿄]]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 가있는 순간 납치했던 사건이다. [[김대중]]을 바다로 던지려는 계략을 꾸몄지만 [[미국]]에 의해 실패하여 [[김대중]]은 [[미국]]과 [[일본]]에 의해 구조되었고, [[김대중]]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자기 집 대문 앞에 놓여지게 된다. 나중에 [[중앙정보부]]는 애국청년 구국대라는 명목으로 그 의도를 끝끝내 숨기고 만다. 용금호에서 [[김대중]]의 온 몸을 묶어서 잘 가라앉으라고 쇳덩이를 붙인 뒤 김대중이 헤엄쳐서 빠져나가게 하지 못하도록 김대중을 [[마대]]자루에 넣어서 바다에 던지려고 했지만 그걸 [[미국]]에게 적발되었고, 그래서 [[김대중]]을 바다에 던지려는 계획을 중단했다. 또한 납치현장에 백두산 담배를 남기는 등 [[북한]]의 소행으로 보이게하는 공작을 꾸몄으나 주일 한국대사관 1등 서기관 김동운 [[중앙정보부]] 요원의 지문을 유리컵을 통해 발견된데다, 사건 당일날 납치범들이 호텔 주차비도 안내고 튀어버려서 교통경찰이 와서 차량번호를 조사해보니 요코하마 한국 영사관 소속 차량으로 드러났다.<ref>그 차의 주인 요코하마 한국 영사관 부영사 유영복이 사건의 주범인 [[이후락]]의 조카사위다.</ref> 그로인해 [[박정희]]나 [[이후락]]은 [[일본]] 당국은 물론 수많은 [[일본]] [[국민]]들에게 굉장히 맹비난을 받았고, 결국 [[김종필]]이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일본]] 총리에게 공개사과를 해야만 했다. 게다가 [[일본]]에 3억 엔의 매수자금을 내줘야 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이미 김대중을 알고 있었던 재일동포들이 엄청나게 분노했으며, 이듬해 광복절 날 영부인 [[육영수]]가 납치사건에 격분하여 [[박정희]]의 암살을 시도한 재일교포 2세 [[문세광]]의 저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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