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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본명은 서여(胥余)이며, 문정(文丁)의 삼남이자 제을(帝乙)의 동생이며, 은나라 31대 왕 주왕(紂王)의 셋째 삼촌이다. 기자는 기(箕) 지방의 땅을 봉(封)받고, 작위가 자(子)이기 때문에 기자(箕子)라고 일컫는다. 벼슬은 태사(太師)을 지냈으며 은나라의 운이 다하자 시서(詩書)·예악(禮樂)·의무(醫巫)·음양(陰陽)·복서(卜筮)의 무리와 백공기예(百工技藝) 등등.. 5천 명의 사람을 거느리고 기원전 1122년에 조선(朝鮮)으로 가서 현도와 낙랑과 평양에 도읍하였다. '''동방군자국'''(東方君子國)을 건립했다. 이로서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였다. 기자(箕子)가 조선에 살면서, 그 조선 백성에게 예의로서 가르치고 전(田)·잠(蠶)·직(織)을 일으켰으며, 백성을 위하여 8조금법(八條禁法)으로 다스렸고, 기자(箕子)는 주나라(周) 성왕(成王) 무오년에 죽었으니, 재위 40년이었고, 나이는 93세였다. 기자(箕子)의 40세손인 기부(箕否)의 시절 '''동방군자국'''(東方君子國)이 중국의 진시황(秦)에게 복속되었다가, 기부(箕否)의 아들 41대 기준(箕準)이 위만(衛滿)에게 쫓겨나서 기준(箕準)이 한반도의 한강 이남 지역인 대한민국 전라북도 서북부 금마저(金馬渚, 지금의 익산)까지 도망쳐서 마한(馬韓)의 시조가 되었다. 이로서 '''동방군자국'''(東方君子國)의 현도(玄菟)와 낙랑(樂浪)과 평양(平壤)의 929년 통치 기간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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