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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파일:I4625195224.jpg]] 이 사람이 사생아 출신이라는 거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출생도 그렇지만 초반생도 기구한게 애비는 얼굴도 알기전에 뒈짓 애미는 공자가 고딩일때 뒈짓해버린다 적자가 아니다 보니 어렸을때 온갖 개고생을 하면서 지식을 쌓았다 사생아에 적자도 아닌 사람은 물고빨면서 정작 적서차별하던 조센씹선비들은..... 우리의 공자님의 철학은 현실적으로 행복하게 사는데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에서는 고대 서양 철학자의 그것과 유사한 맥락을 갖는다. 이는 후대에 다듬어져 유가라는 큰 학문의 범주로 발전된다. 그러나 이러한 공자의 생각은 희한하게 변질되어 공자의 의도를 왜곡하는 요소가 덧붙여진 하나의 학문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후에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의 통치 이념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극혐}} {{쓰레기}} {{심플/꼰대}} [[유교 탈레반]]으로 변질되어 오늘날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이 병신같은 교리가 자리잡게 되었다. 하나의 민족 문화의 요소로서 자리잡았다. 즉, 니가 헬조선인인 이상 이 윾교문화에 벗어날 수 없다. 후대에도 그 후대에도 우리 후손들 또한 마찬가지. 이 좆같은 윾교의 교리가 현대 헬조선 사회의 헬스러운 모습들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는 직접 영향을 주진 않았지만 간접적으로라도 영향을 주었다. 공자 만만세 씨발. ㄴ유교를 꼰머문화로 변질시킨건 주희지 공자가 한 주장들은 극혐까진 아니었다. 왜? 라고 물으신다면 [[헬조선]], [[유교 탈레반]] 참고. 이 아래부터 문서 끝까지 키배다 이상하게 중국인들은 한국이 '공자는 한국인이다'라고 역사왜곡한다며 [[섀도우 복싱]]을 한다. 일부 [[환빠]]새끼들 말고는 어떤 새끼도 그런 생각 한 적 없는데 짱깨들은 왜 병신같이 부들부들하는 것일까? ㄴ사실 반은 맞는 말이다. 공자가 자기 자신을 동이족이라 했기 때문 병신 머만새끼들이나 쪽본 새끼들이 한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는 존나 소오오수 [[환빠]]새끼들 주장을 한국인들 대부분이 갖고있는 생각인 양 퍼뜨리고 다니는데 - 한국인은 아니지만 친한파였다. '아 동방의 나라에서 살고싶다 ㅅㅂ' 이랬었던 적이 있는데 이 당시 중국 꼬라지 보면 이해가 갈것이다 솔직히 헬조선이 다른걸로 깔 게 얼마나 많은데 왜 굳이 이런 병신같은 거짓말을 지어서 이걸로 까대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 아무리 헬조선에 인물이 없어도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으니깐 착각도 정도껏 했으면 좋겠다 자꾸 공자충들이 깝치는데, 냄새나는 개짱꼴라 씹새들의 정신문화에서 배울건 하나도 없다고 본다. 헬중궈를 한번 가 보면 공자=병신이 뇌리를 스친다. 중국 한번도 안가본 새끼들이 공자를 유독 빤다. :"현대 중국 가보면 좆나 미개하다. 그러므로 공자는 병신이다." 타당한 추론처럼 보이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중궈 새끼들 문화대혁명 하면서 유학자들 반동으로 몰고 유교 문화재 존나 불살라 없애가지고 우리나라한테 유교 연구 자료 역수입했던 걸로 안다.아니 그리고 공자가 중국만의 역사이냐?대만과 싱가포르의 70%의 역사이기도 한데 플라톤, 데카르트, 아리스토텔레스, 프렌시스 베이컨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철학+과학에 능통하고 실제로도 법률, 과학,인류 문명에 기여했던 사람들이고, 공자 이 병신은 오직 문돌이+중화주의 쉑히라서 죄다 들을 가치도 없는 개똥철학만 씨부린 새끼이다. 걍 공자는 김용옥하고 비슷한 캐릭터라고 보면 딱 될듯. (예를 들면 프렌시스 베이컨의 과학적 방법 (이론을 새우거나 증명을 할때), 아리스토 텔레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미리 예언하고, 고래를 어류가아닌 포유류로 분류하던 천재쉑히다.) 공자 이새끼는 포유류로 분류하기는 커녕 고래 고기나 쳐먹었겠지. :"철학뿐만 아니라 다른 (이과) 분야에 능통했던 철학자들은 새길 만하고, 공자는 문돌이라 새길 만한 철학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니 말에 따르면, 공자뿐만 아니라 철학만 했던 철학자들은 모두 헛소리만 했다는 소리네? 그러면 새끼야 넌 플라톤이나 데카르트, 아리스토텔레스가 썼던 순수 철학적 저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다 씹소리라 쳐 내야 한다고 생각하나? 공자는 심각한 주나라뽕 말기 환자였다.. 호감 수준을 넘어서 추앙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문화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우월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다른 건 몰라도 확실히 현대 중궈들이랑 비교하면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생전에는 천하를 주유하며 제후들을 설득하여 유가적으로 정치적이념을 세워야 한다고 했지만, 이미 힘 좀 쓴다는 새끼들은 군대 키우고 재정을 불리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당대 제후들은 공자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자가 말하던 도(道)는 무엇인가? 법가와 종행가 병가와 다른 정치적 이념인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의미했다 공자는 왕도정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仁)과 선(善)으로 인민을 다스려야한다 했지만, 오로지 인과 선으로만 다스려서 인민들이 풍족해질 수 없다는 것이라는 참된 센세들의 비판에 대하여 그는 허탄한 신화를 예시로 들며 변론하길, " 우리 주나라 열조들의 성인들께서는 인과 선으로 다스렸기에 찬란한 문명을 일궈낼수있다! " 라며 기승전주나라의 뇌내망상을 지껄였다. 뜻을 펴지 못한 공자는 13년간 천하를 떠돌며 "상가지구"<ref>상갓집 개</ref> 신세가 되었다. 그에 반해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는 왕도정치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이념(道)을 들고 실제로 제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끈 관자(관중)은 어떠한가? 관자 왈 " 나날의 생활이 즐거워지면 자연히 예의를 분별한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기만 하면 도덕의식은 저절로 높아진다." "물질이 풍부하기가 천하에서 제일이 아니면 정신적으로 천하를 이끌 수 없다." 라며 훨씬 더 현실적이고 서민들이 경제적으로 풍족해져야 예의와 도덕의식 그리고 천하의 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공자 뇌내망상가 ㅇㅈ? 그래서 못내 인정하기 싫은 공자는 논어에서 여러번 관자를 비난하고 헐뜯으며 소인으로 몰아가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쯤되면 그 스승의 그 제자인 유교 탈레반 ㅇㅈ? ㄴ 공자가 관중 무조건 까기만 했다고 씨부리는데 그건 아닌거 같아서 태클건다, 논어의 한 구절이다. 子貢曰 자공이 말하길, 管仲 非仁者與。桓公 殺公子糾 不能死 又相之。 관중은 어진 이가 아니잖습니까? 환공이 (본래 주인인) 공자 규를 죽였는데, 능히 죽지 않고 또 (환공을) 도왔습니다. 子曰 공자가 말하길, 管仲相桓公覇諸侯 一匡天下 民到于今 受其賜。 관중은 환공을 도와 제후를 제패하고, 천하를 한번에 바로잡아 백성들이 지금 그 도움을 입고 있다. 微管仲 吾其被髮左衽矣 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 自經於溝瀆而莫之知也 관중이 아니면 우리는 (오랑캐처럼) 머리를 헤치고 왼편으로 옷을 매었으리니, 어찌 필부필부(평범한 사람)같이 알량한 절개를 위해서 도랑에서 스스로 목 매어 알아주는 이 없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뭐 공자가 관중 안 까진 않았다. 공자는 관중이 자기가 모시던 주군하고 맞먹으려고 들었다면서 '관중이 예를 안다면 또 누가 예를 알지 못하겠느냐?'고 까기도 했다. 그리고 관중이 아내를 셋이나 두고, 개혁 정치를 하면서 세금을 엄청나게 걷고, 임금이나 할 수 있는 것을 자기 집안에 두는 사치를 부리는 등 그릇이 작은 사람이긴 하지만, 천하를 바로 세울 만큼 능력은 있다고 인정했다, 즉, 관중의 개인적인 성향을 깐거지 관중의 정치, 경제 능력을 깐게 아니다. 거기다가 관중 스스로도 이 부분은 좀 찔렸는지 관중의 변명에 따르면 일부러 사치를 부렸다고도 한다. 제나라 환공이 사치를 부리고 여자랑 남자를 좀 밝혔는데. 관중이 말하길 왕이 사치로 욕 먹는것 보단 자기가 대신 욕먹는게 낫다면서 오히려 자기도 왕만큼 사치를 하려고 집도 궁궐처럼 크게 짓고 처도 3명이나 두었다고 한다. 거 핑계도 참. 그리고 기본적으로 당시 유가도 백성들이 잘 먹고 잘살아야 예가 생기고 사람들이 도덕이 생긴다는걸 알고 있었다. 아니 맹자의 경우에는 '시발 백성들이 잘먹고 잘살게 해주고 학교를 세워 도덕을 가르쳐 백성들이 편안하기 살게 해주는 그런 놈이 왕 안 되겠냐?' 라고 거의 절규 수준으로 부르짖기도 했다. 다음은 맹자의 해당 발언이다.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내는 데 유감이 없는 사회를 구현함이 왕도(王道)의 첫걸음입니다." "5무의 택지 주변을 둘러 뽕나무를 심게 한다면, 쉰 넘은 이들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닭, 새끼 돼지, 개, 큰 돼지 등의 가축을 기르는 데 그 번식기를 놓치게 하지 않는다면, 일흔 넘은 이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100무의 전답을 나누어 주고 그 농번기를 놓치게 하지 않는다면, 여덟 식구 딸린 가정에 굶주림이 없게 될 수 있습니다. 상, 서와 같은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효제의 의를 강명한다면, 머리 희끗한 이들이 짐을 이고서 길거리를 다니는 일이 없게 될 수 있습니다. 노인들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뭇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는, 그러한 사회를 구현하고서도 왕王 되지 못한 자는 이제껏 있어 본 적이 없습니다." "군주의 푸줏간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군주의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의 낯에는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판에는 굶어 죽은 이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으니, 이는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먹게 한 것입니다. 짐승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조차 사람들은 혐오하는데, 백성의 어버이 된 자로 정치를 행함에 있어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먹게 함을 면치 못한다면, 어찌 백성의 어버이라 이름될 수 있겠습니까? 중니仲尼(공자)가 말하기를; "순장용 목각 인형을 처음으로 만든 자는 그 자손이 없으리라!" 하였으니, 이는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다가 부장품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어찌 이 백성들을 굶어 죽게 만들 수가 있습니까?" 결론적으로 말한다. 유가는 경제가 부흥해야 사람들에게 인의가 돌아간다는거 부정한 적이 없다. 그냥 시발 유교는 헛된 인간의 성,리, 인의도덕만 논하는 씹선비들이라고 덮어높고 일단 까기만하고 '아 다 유교 탓이양!' 유교무새 짓을 하면 쓰냐? 천하는 결국 법가의 도를 따르던 진나라의 시황제에 의해 통일되었고, 시황제는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놀랍고도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온 천하에 도로를 내고, 화폐를 통용시키고, 그 찬란하다하는 주나라의 문명과 견줄 수 없는 아방궁을 건설하였다. (아울러 고대봉건제보다 훨씬 우수한 제정중앙집권체제를 건설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대봉건제로 돌아가자는 탈레반스러운 유생들이 존재했다. 시황제는 그들을 생매장시키고, 그들의 허탄한 개소리를 써갈긴 경전도 모조리 불사르는 업적을 세우기도 하였다. 이게 그 유명한 분서갱유. 크으... 참된 지도자 시황제 ㅇㅈ) :ㄴ그리고 온 천하를 도탄에 빠뜨려서 진승, 오광을 비롯한 농민들의 죽창을 맞아서 통일 15년만에 작살남, 아따 진나라는 백성을 잘먹고 잘살게 해서 백성들의 죽창을 맞았당께요! 진나라는 온 천하에 도로를 내고 화폐를 통일하고 도량형을 통일했지만 급작스럽게 다른 6국의 백성들에게 진나라의 혹독한 법률을 강요하고 부역에 좀 늦었다고 때려죽이는등 지나치게 법을 융통성없이 적용했고 위에서 어느놈이 인용한거 마냥 백성들을 편하게 해주지도 못했다. 결국 한고조 젖탱이가 그 난리를 수습하고 유가, 도가, 법가 적당히 쓰까서 한나라 400년의 토대를 만들고 나서야 전 중국이 진정됨. 후대에 이때 진나라가 왜 욕을 처먹었냐면 법에 대한 시각이 너무 극단적으로 가는 바람에 무슨 개미나, 기계의 부속처럼 인간을 철저하게 사회의 부속품으로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진나라를 방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건 뭐 사람 사는데가 아니라 개미소굴인가요?'라고 괜히 깠는줄 아냐? 후대 통치자들이 유교를 국시로 삼아도 적당히 법가를 쓰깐것도 법가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진나라처럼 사람을 무시하는 수준까진 가지 말아야 한다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ㄴ애시당초 사실 관점에 따라 진나라도 그렇게 법가의 사상을 충실히 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분서갱유처럼 책을 태우고 선비들을 학살한 사건은 '백성의 앎(공부, 지식)이란 군주(혹은 국가)의 독'이라고 한 도가의 주장에 더 가깝다 할 수 있다. 법가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모든 백성을 포함해 왕조차 예외없이 법 아래에 둬야 하는 원칙, 즉 왕도 법을 따라야 하다고 주장하는 철저한 법치주의에 있었던 것인데 엄밀히 말해 진시황이나 그 후 황제들, 진나라의 기득권 층은 모두 백성들에게나 가혹하게 엄할 뿐 자신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진나라의 진짜 잘못은 법가를 잘못 해석하고 지들 조때로 자기네들 편하자고 마개조를 한 탓에 바람에 후대 사람들에게 법가는 그 막장 진나라 놈들이 하던 거잖아? 그런거 써도 괜찮냐? 라고 이상한 편견을 심어준것에 있다. 이런데 덮어높고 진시황 찬양하고 있으면 현대 중국 공산당놈들이 진시황이 빨면서 자위질하는거랑 대체 뭐가 다름? 중국 공산당 놈들도 공산주의 뜯어고쳐서 우덜식 공산주의 하고 있는거랑 비슷하지 않냐? ::ㄴ한비자에 따르면 왕은 예외적으로 법 위에 서있다고 인정함. 법가의 법치주의도 왕의 권위에 기반한 느낌이 강하다.<br>그리고 애시당초 법가의 집대성자라는 한비자, 이사가 유가 순자의 제자들임, 순자가 제자들 까면서 '미친놈들 좀 적당히 해라'라고 괜히 그런줄 아냐. 애시당초 선진시대 사상이라는게 서로 까기도 했지만 영향을 받고 존중하는 면도 있었다. 중국 발음 정확히 말하자면 현대한어로는 쿵쯔(Kung Zhue)라 읽는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는 다르게 발음했을것이다. 괴력난신을 말했지만 조상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였다. 그러나 모순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이 논어에 따르면 '敬鬼神而遠之(경귀신이원지)'라고 하여 혼령 또는 귀신은 공경하기는 하되 멀리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라는 책이 꼰대에 신물이 난 유교까들에게 많은 환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라는 반박문헌도 존재한다. 기록에 의하면 존나 큰 떡대를 가지고 있으니 함부로 깝치지 말자. 그런데 그 기록이라는 게 공자가 직접 키운 수제자들이 남긴 기록이고, 초상화도 그 기록에 기초해 만든 것이다. 뭐가 문제냐면 지금 보면 존나 데프콘 닮기도 했지만 그 생김새 묘사라는 게 거의 석가모니 32형상급으로 엄격, 진지, 근엄의 표본적인 얼굴이었고, 제 3자가 남긴 기록과 초상화를 보면 짱구머리에 평범하거나 왜소한 체격이었다. 그러니 개길지 말지는 알아서 판단해라. 정작 본인이 살았을 때의 지배자들은 죄다 공자의 사상을 허담으로서 무시하고 다녔고, 결국 공자 본인도 수제자 안연 사망 이후 충격으로 쓰러져 심신이 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제}} 아시아를 소위 쇠퇴 철학의 복마전으로 만든 장본인이라고 한다. 고대 서양 철학자들은 "수학 역시 인문학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러니 철학과 수학을 같이해야 지식인이 된다." 라는 주장을 하며 현 중·고등학생 급 수학을 공부하며 과시했는데, 이게 수 천년 동안 유행을 타면서 산업혁명의 지양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공자는 "사회의식이 밑바닥이니 일단 인간성 부터 키우자." 하면서 철학과 사회문제 해결에만 앞장서는 오류와 하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공자 말씀만 골몰하던 동양은 서양에서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나면서 사회가 발전할 때까지 이공계열은 잡학 취급하면서 골품제 마냥 3품까지로 승진 제한하고, 심지어는 양반들 역시 기술을 천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지금 항복국인 일본이 경제력으로 유럽을 강타하고 공산주의로 경제 파탄에 이른 중국이 뒤늦게 합세해서 일본과 같이 위력을 뽐내고 있고 동아시아 동네북 -> 제국주의 식민지 -> 냉전대리 전쟁에 3단을 밟고 인구도 별로 없으면서 "우리는 가진게 인적자원 밖에 없어 ㅎㅎ" 하며 자학 개그를 펼치는 대한민국이 일본 1인당 gdp를 추월하려는걸 볼때 만약 공자가 이공계열을 강조 했을때 서양은 우리 노예가 됐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심지어 평균 IQ조차 초월하는것을 보면 서양과 동양의 차이는 현격하였을 것이다. 평생동안 서양을 미개국으로 부를 수 없게한 장본인이다. 공자만 아니었으면 스킨헤드 같은 회색분자들은 진즉에 참수되었을 것이다. ㄴ이 좆병신새끼는 대가리랑 사상만으로 산업화가 가능한 줄 아네, 명조까지만 해도 동양이 서양 과학력 앞섰는데 공자가 무슨 청나라 시대 인물이냐? ㄴ 소위 공자까 인간들이 무식이 펄펄 넘치는거 인증하네 뭐? 공자 때문에 이공계열이 잡학 취급? '서양 철학자들은 수학을 중요시 여겼는데 공자는 안그랬어요 빼애액!' 공자의 공직자 교육 커리큘럼을 소위 육예라고 하는데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 등 6종류의 기술이다. 예는 예용(禮容), 악은 음악, 사는 궁술(弓術), 어(御)는 마술(馬術), 서는 서도(書道), 수는 수학(數學)을 뜻한다. 한 마디로 교육자로서의 공자는 당시 국가의 의전과 공문서작성, 전란중 무사로서의 교육, 예체능 교육, 수학 같이 실용교육 등 다채로운 분야에서 전인교육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던 사람이다, 이 때문에 동양에서도 공자가 수학을 가르쳤단 이유로 개인적으로 수학에 손대는 학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시발 공자를 까더라도 존나 무식이 펄펄 뛰는 방식으로 까니 공자까 새끼들이 병신이라는거. ㄴ 그래서 수학자, 과학자 이공계들이 중심적기틀이 되어서 정말 나라를 이끌었는가는 미지의 함정이지만 일단 공자는 못하는 것이 없는 먼치킨이라고 전해진다. 요약하자면 존나 빨아야할 사람이라는 것 같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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