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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빌런}} {{광신도}} {{천수누린새끼}} {{빛과어둠}} {{인용문2| 신 송지가 보건데《전(傳)》에는 “어진 사람의 말은 그 이점이 너무나 많다”라고 했다. 그러나 어질지 못한 말은 그 이치가 반드시 거꾸로이다. 무릇 어진 사람의 공덕은 드러나기가 어렵지만, 혼란의 원천은 쉽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행동이 화의 기틀이 되면 재앙이 무려 백 세대에 걸쳐 이어진다. 그 때는 원흉인 동탁이 이미 효수되어 천지가 다시 시작을 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화근을 다시 만들어서 커다란 가시나무가 잔뜩 자라나게 했으니, 전국이 다시 망가지는 애석함이 초래되고, 백성들과 아이들은 고통에 빠지게 되었다. 이는 가후의 몇 마디 말 때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가후의 죄가 어찌 크지 않겠는가? 예로부터 천하가 어지러워진 것 가운데 이보다 큰 것은 없었다. - 위서 가후전 주석 배송지의 평.}} 처세를 잘해서 [[동탁]]-[[이각]]-단외-[[장수]]-[[조조]]&[[조비]]로 군주를 갈아 타면서도 인정받았다. 그것도 단순히 "응 항복" 수준도 아니다. 일단 조조가 표면상으로는 한실의 보호자를 자청하는 이상 이각의 참모였다는 것부터가 죽을 죄였고, 장수 밑에서 일할 때는 조조의 장남 [[조앙]]을 죽게 한 전과가 있는데도 시기적절하게 조조에게 항복해 77세의 나이로 늙어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다 간거다. 이놈 처세술이 개오진다. 서량에서 인질로 잡혔을 때 단경의 외손자라고 구라를 쳐서 다 참수당하는 와중에 혼자 석방되었고 조조의 장남 조앙과 조조가 가장 아끼는 부하 전위를 죽게 만들어놓고도 조조에게 항복을 해서 자기가 모시던 장수를 인간방패 삼아 자기는 빠져나갔고 그러고도 조비 대에서는 앞서 말했듯 손권이 가후같은 놈을 중용했다고 조비를 까자 가후는 그걸 또 귀신같이 눈치채고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튀었다. 게다가 처세술 뿐만 아니라 50년동안 한번도 실패한 계책을 내놓지 않아 제갈량보다 뛰어난 책사라는 평도 받고 있다. 그것 때문에 빠돌이 빠순이가 존나 많다 ㄴ 사실 제갈량은 연의거품 때문에 그렇지 책사가 아닌 우수한 정치가라 비교대상이 좀 빗나갔다. ㄴ 쓰레기들 밑에서 갈아타면서 지 몸뚱이 하나 살겠다고 발악하던 놈이 중임 받으면서 대전략을 직접 짜며 나라를 세운 제갈량 같은 인물에게 비빈다는 건 개 정신나간 씹소리다 문제는 책략 내줄 놈을 잘못 고른거다. 이각, 곽사는 이 새끼 책략 때문에 정권 잡았다. ㄴ 근데 이각, 곽사랑 손 잡은 건 가후 자기도 살려고 그랬던거 같다. 왕윤이 '동탁 밑에 있던 놈 다 죽인다.' 하니까 씁, 어쩔 수 없지. 하는 심정으로 도왔을 가능성이 있다. 이각과 곽사가 병신짓 할 때 황제 탈출 도와주기도 했고. ㄴ 이거에 대한 반박을 하자면 가후는 처음에 자기가 모신 주인이 동탁이라는 시정잡배 지잡충 새끼였다는 것에 있다. 지잡대 나온 동탁을 섬긴 것부터 이미 잘못이라는 얘기다. 가후가 이런 지잡대 출신 동탁 새끼한테 낸 계책들이 하나같이 비싼 계책이었는데 이 계책으로 인해 동탁은 별로 어렵지 않게 황제릴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 애초에 동탁에게는 병력이 3000명밖에 없었다. 가후는 그걸 800명씩 3개조로 나눠서 새벽에 몰래 2400명을 성밖으로 내보낸 뒤 600명만으로 성에 주둔하게 하고 아침에 800명, 점심에 800명, 저녁에 800명씩 계속 입성시키고 새벽되면 또 빠져나와서 이런 가짜 행군을 계속 반복했다. 그 결과 이제 갓 주인을 잃은 하진 휘하의 금군은 동탁에게 항복했다. 또 가후의 처세술 고평가 중 '인간 관계를 거의 안 맺고 숨죽이며 살았고, 사돈도 잘 나가는 집과는 맺지 않았다.'라는게 있는데, 최근에는 이건 거품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당시는 윾교 사회라서 가문의 체면을 중시했던데다가 동탁, 이각, 곽사가 깽판치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자기들에게 유리하니까 부하로 쓴 조조, 조비 빼면 누가 가후를 맘에 들어해서 사돈 맺고 친하게 지내겠는가. 오늘날에 비유해보면 그야말로 전낙지가 광주 대학살을 벌일 당시 참모였던 [[허삼수]] 놈이 은근슬쩍 자취를 감췄다가 다시 나타나 비박-친박 갈아타다가 지금은 방향을 180도 바꿔서 [[달]]빠로 전향한거다. 결국 가후의 처세란건 대국적인게 아니라 오늘날 헬조선을 좀먹는 개새끼들이 하는 행동이랑 다를 바 없다는거다. 그래도 곽가나 법정처럼 개인적인 인간성 지적은 없었고, 자기가 한 일에 죄책감은 있었는지 이각과 곽사가 황제 괴롭힐 때도 몰래 황제를 도와줬다. 또 조조가 적벽대전 일으키려는걸 우리가 힘도 명분도 압도적이니 가만히 냅둬도 평화승리 가능하다고 반대하면서 전쟁을 끝내려고 노력한 면도 있다. 조조는 그렇게 천통하면 자기가 한나라를 못 집어삼키니까 거절하기는 했지만 이 말 들었으면 난세가 빨리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왔을거다. 물론 우리가 아는 삼국지는 없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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